"안전교육은 생존기술" … 몸에 배게 반복해 가르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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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8시 광주광역시 북구 P초등학교 앞 이면도로. 인도 없이 이어진 2차로 넓이의 600m가량 도로가 주차한 차들로 빼곡하다. 학생들이 차를 피해 도로 한가운데로 걸어간다. 멈춰 있던 차가 시동을 걸자 학생이 화들짝 놀라 피한다. 학부모 이모(44·여)씨는 “등하굣길에 아이들이 안전하게 걸어갈 인도가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도로로 진입하는 사거리도 위태롭긴 마찬가지다. 꼬리를 무는 출근 차량, 무단횡단하는 학생들, 손님을 태우려고 급정거하는 택시…. 하지만 경찰이나 안전도우미는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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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시각 교무실에서 세월호 참사 뉴스를 보던 대전광역시 서구 A초등학교 교사 김모(32·여)씨는 더럭 겁이 났다. 학교는 과연 안전한지 자신이 없어서였다. 지난겨울, 빗물이 얼어붙은 복도에서 미끄러져 무릎이 까진 여학생이 떠올랐다. 갈라진 시멘트 바닥, 비만 내리면 물이 고이는 운동장…. 학생들에게 “조심하라”고만 타이르기엔 너무 위험했다. 스스로도 부끄러웠다. 안전교육 시간엔 TV만 틀어놓은 적이 많았다. 김 교사는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가 안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이 새삼 다가왔다”며 “앞으론 안전교육부터 제대로 시키겠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안전교육의 장(場)이어야 할 학교조차 안전불감증에 빠졌다. 새정치민주연합 유기홍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학교 안전사고는 2008년 6만2794건에서 지난해 10만5088건으로 67% 늘었다. 수학여행 사고도 2011년 129건에서 지난해 216건으로 증가세다. 안전교육도 부실하다. 한국교총이 2011년 초·중·고 교사 373명에게 학교 재난교육 수준에 대해 물었더니 94%가 “(매우) 부족하다”고 답했다. 울산의 한 초등학교 교사 윤모(32)씨는 “대부분 자료로 가르치고 1년에 한 번쯤 체육시간에 심폐소생술 같은 걸 실습하는 게 고작”이라며 “세월호 참사 같은 비상 상황에서 학교에서 배운 걸로 학생들이 대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종열 인천대 행정학과 교수는 “안전 교과목을 따로 편성해 주당 1시간 이상 정규 수업으로 가르쳐야 한다”며 “교재가 아니라 실습 위주로 운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체험형 교육을 진행한 학교에선 학생 반응이 좋다. 서울 하나고는 지난달 30일 개교(2010년) 이래 처음으로 화재 대피 훈련을 했다. 비상벨이 울리자 학생들이 정해진 통로로 빠져나와 운동장에 모였다. 조수빈(16)군은 “중학교까진 교실에서 머리로만 받던 안전교육을 직접 몸으로 해보니 느낌이 달랐다”며 “불이 나도 안전하게 피할 수 있을 것 같아 안심된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수영으로 200m를 갈 수 있어야 졸업장을 준다. 이명선 이화여대 보건관리학과 교수는 “안전교육의 초점을 ‘살아남기 위한 기술’에 맞춰야 한다”며 “어릴 때부터 지하철·백화점·버스·배 등을 이용하다 비상시 어떻게 탈출하는지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에 광나루·보라매 2곳뿐인 재난안전체험관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교만으로 부족한 부분을 선진국처럼 외부 안전 전문가를 활용해 채우는 것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최상옥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아이들 안전교육을 위해 학교와 경찰·소방서·민간 안전단체가 문턱을 낮춰 수시로 협조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환·정종문·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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