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잔류 일인, 소군이 약탈, 강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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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 외무성은 6일 45년 2차 대전 종전직전부터 52년 미군 점령 종결 시까지의 일본극비외교문서 1백권 3만6천 「페이지」를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 극비문서의 주요사항은 다음과 같다.
▲「포츠담」선언 수락배경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 45년7월26일의 미·영·중 등 3개국에 의한「포츠담」선언에 대해 27일 외무성은 이를 수락하기로 했지만 최고전쟁위원회에서 「아난」 육군상 등이 이를 반대, 두 차례의 원폭세례와 소련의 대일 참전(8월9일) 을 당했다.
8월9일 천황이 이 선언을 수락하기로 단안을 내리고 그것을 외교경로와 NHK등의 초단파방송 등을 통해 연합국 측에 알렸다. 연합국 측이 천황제 존속을 확인해주는 것이 관건이었는데 12일 방송을 통해 수신된 연합국 측의 회신에는 『천황은 연합국 측에 종속된다.』는 귀절이 있었다.
외무성은 군부의 반발을 예상, 『천황은 연합군 총 사령관의 제한 하에 둔다』고 고쳐 번역하여 겨우 거부의 동의를 얻어냈다.
한편 일본은 종전 무렵 소련을 중립국으로 착각, 소련을 통해 미국에 평화협상을 타진했으며 이때 미국은 이미 소련의 대일전 참전결의를 짐작하고 있었다.
▲북한 및 만주잔류일본인문제
종전 후 부동산정리 등 문제로 미처 귀일 치 못한 북한 및 만주잔류일본인 60만명이 소련점령군으로부터 약탈과 폭행 및 강간 등을 당하고 있다는 현지의 보고에 따라 외무성은 9월7일 주소 일본대사관「가메야마」참사관 등 4명의 밀사를 서울에 파견했으나 서울주재 소련총영사가 이들의 평양방문계획을 거부하고 「치스차코프」소련군 사령관의 반대로 별다른 대책을 세울 수가 없었다.
한편 일본군은 포로가 될 경우에 대비한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군이 일단 연합국 측에 포로가 되면 놀랄만한 복종심과 참을성을 발휘하면서 연합국 측에 모든 조사정보를 제공했다고 이문서는 밝히고있다.【동경=김경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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