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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개혁'으론 '관피아' 척결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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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세월호 참사로 ‘관피아’ 척결이 시대의 화두로 떠올랐다. 관료와 마피아를 합친 이 어색한 단어는 모피아·교피아·해피아 등의 구분조차 없이 관료와 관료제 전체를 싸잡아 마피아에 비유한다. 프레임 중에서도 빅 프레임이지만 그 함축은 신랄하기 짝이 없다. 지금 이 시점 상황이 모든 이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한때 관료는 과로·박봉의 대명사로 동정을 사기도 했지만 정권교체가 거듭되면서 마지막에 웃는 진정한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우리가 아니면 안 된다는 자화자찬식 집단사고에 사로잡혀 오로지 임명권자에게 보고만 잘하면 경력이 보장됐으며, 퇴직 후에도 먹고살기 어렵지 않을 만큼 유관기관, 유사 유관업계, 협회 등지에 자리를 보전하고 전·후관예우와 유착의 공생관계를 구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던가. 이제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맥락에서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관피아의 적폐를 근절해야 한다는 명제는 거부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단지 그 올바른 해법을 찾는 데 골몰하는 분위기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해법은 행정고시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행정고시가 명칭은 5급 공채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관료 카르텔의 입구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국가고시가 그렇지만 출신학교나 연배도 고시 기수를 당해내지 못한다. 고시 출신들은 으레 고시 몇 기로 만나고 또 그렇게 서로 분류한다. 고시동기회를 통해 끼리끼리 봐주고 밀어주기 문화가 숙성되어 사회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행정고시 폐지만이 능사일까. 5급 공채를 폐지해 본들 공직사회에 만연한 무사안일과 관료 카르텔이 근절되지 않는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 대안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과 전문성을 쌓은 전문가들을 채용하는 개방형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부유한 집에서 자라 외국에서 공부하며 좋은 ‘스펙’을 쌓은 사람들이 고위직을 독식하는 이른바 ‘현대판 음서제’의 부활이라는 부작용도 감안해야 한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야심 차게 도입한 개방형 인사제도도 결국 제 식구 챙기는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나마 고시제도가 있기에 가난하지만 유능한 인재들이 공무원으로 선발될 수 있다는 긍정적 평가도 외면할 수 없는 노릇이다.

 공직인사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관피아가 결성될 여지가 없도록 인사 방법과 내용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장관에게 힘을 실어주고 책임을 엄격히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나, 인사스타일을 바꿔 ‘범생이’보다 젊고 개혁적인 인사를 중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나 60년 넘게 고착된 이 뿌리 깊은 관행이 속 시원히 근절되기는 어렵다. 공직자윤리법을 강화해 ‘전관예우 재취업’을 엄격히 제한하자는 얘기도 솔깃하다. 하지만 사실상 공식화돼 버린 관피아의 적폐를 근절하지는 못할 것이란 비관이 앞선다.

 여기서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관료의 생리다. 관료들은 늘 임명권자의 눈치를 보고 심기를 살핀다. 임명권자가 어디에 관심을 두고 있고 또 얼마나 역점을 두고 있는지를 간파하여 미리 알아서 기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만일 대통령이 관피아 문제를 반드시 근절하겠다는 올바른 시그널을 준다면 적어도 한동안은 영이 서고 효과를 거둘 게 분명하다. 하지만 대통령이 관료에 대해 의존적인 눈빛을 보내는 순간 그들은 이번 싸움도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고 여길 것이다. 사실 늘 여론의 질타와 개혁의 위협을 걱정하던 관료들에게 박근혜 정부의 등장은 은근히 신선한 반전이었다. 박 대통령은 역대 어느 누구보다도 관료·검사·법관 출신을 중용해 왔기 때문이다. 역대 정권에서 빠짐없이 추진해 왔던 관료개혁 프로그램이 따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간파한 관료들이 쾌재를 불렀을 것임은 분명하다. 이 눈에 띄는 공백이야말로 적폐가 임계점을 넘게 만든 방아쇠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관료들의 천국이 되어가는 공직사회의 생태계를 바꿔나가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관피아를 완전히 추방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한 올바른 출발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관피아’를 척결한다면서 그 일을 다시 관료 출신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찾아보면 공정하고 개혁적이면서도 균형감각을 갖춘 인재들이 적지 않다. 없다고만 하지 말고 열심히 찾아내 등용하고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리고 꼭 필요한 또 하나의 시그널은, 관피아 척결을 위한 관료개혁이 일시적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 임기 마지막까지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상시과제라는 점을 분명히 드러내 인식시키는 것이다. 복지부동으로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음을 깨닫게 해줄 필요가 있다. 사실 관료개혁은 주기적으로 또는 불시에 닥치는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필수불가결한 방법이기도 하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