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예산의 급팽창과 마찰요인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예산당국에 제출된 78년 일반회계예산요구액은 무려 5조2백39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77년도의 본예산규모 2조6천5백92억원보다 88.9%가 증가된 것이다. 예산당국의 78년 예산편성 지침에선 예산요구액을 금년보다 30%이상 증가하지 않도록 했으나 실제 30% 이내로 예산요구를 억제한 곳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금년보다 1백% 이상 늘어난 곳도 많다.
재무부는 금년예산의 5.4배, 상공부는 3.8배, 중앙선관위는 2.4배, 교통부는 1.9배의 요구를 했다.
전체예산요구액이 90% 가까이 늘어난 것만 보아도 세출수요가 해가 갈수록 격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예산요구액은 예산당국의 사정과정에서 대폭 손질될 것이지만 내년예산도 상당한 팽창을 면치 못할 것만은 확실하다. 우선 거의 손대기가 어려운 국방부의 예산요구액이 1조3천6백98억원으로 금년보다 49.2%나 늘었고 문교부의 요구도 금년보다 50.5% 증가된 7천59억원에 달했다.
금년보다 규모가 급증한 재무부나 상공부의 예산요구도 연불수출·중화학공업지원 등 경제규모의 확대와 고도화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또 이차보상·내외부채상환 등 이월, 누적된 지출요인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싸우면서 건설해야 하는 우리의 어려운 처지가 세출수요의 확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한미군 철수와 관련한 자주국방의 가속이 예산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5조원이 넘는 내년 예산요구는 모두가 그 나름의 명분과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토록 늘어나는 정부예산을 국민경제가 과연 얼마만큼 감당할 수 있느냐에 문제가 있다. 예산규모는 근년에 들어 급팽창, 74년부터 76년까지 3년 간 연속으로 매년 50%씩 증가했으며 금년에도 추경까지 합치면 증가율은 30%를 넘는다.
예산규모의 확대는 바로 조세부담의 증가를 뜻한다. 조세의 소득재분배 기능이 잘 안되어 있는 재정구조에서 담세액을 계속 높여 가는 것이 정치적·사회적 마찰요인을 내연시키고 있지 않는지 한번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 나라의 담세율이 19%정도로서 다른 선진국에 비해선 낮다고 하지만 교육과 최저생활 및 의료를 국가에서 보장하는 선진국과 이를 모두 자담해야하는 한국을 같은 기준으로 비교해선 안 될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예산의 팽창은 문제가 있다. 예산규모의 증가는 국민경제의 총 자원 중 정부부문의 사용비중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물론 정부 기능의 확대와 더불어 정부부문의 비중증가가 세계적인 추세지만, 최근의 이 나라처럼 급팽창하는 것이 과연 소망스러우냐 하는데는 큰 의문이 있다.
우리 나라의 예산구조는 매우 경직적이고 또 경기조정기능이 거의 없다시피 한 실정이다. 이런 예산구조에서 예산규모의 확대는 바로 민간부문의 위축과 압박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는 지금 어려운 고비에 있다. 금년에 사상처음으로 경상수지에서 흑자가 나 외환부문의 통화팽창이 가속될 전망이고, 부가가치세의 실시 등으로 안정기조가 매우 불안한 상태에 있다. 또 중화학·수출산업의 활기와는 대조적으로 내수용 중소기업들이 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득격차의 심화와 중산층의 침몰이라는 사회적 마찰요인도 두드러지고 있다.
이러한 여건에서 정부예산이 어떤 완충 역할과 기능을 해야할지 한번 시야를 넓게 생각할 때가 된 것 같다.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여건의 변모에 부응하여 예산의 구조나 성격에도 대담한 발상전환이 있어야겠다.
예산은 수자로 집약된 최고정책인 이상 보다 고차원적인 정책발상이 필요할 것이다. 예년 우리 나라의 예산편성은 너무 행정적 차원에 머무르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5조원이 넘는 예산요구가 행정적 차원에서 보면 모두 필요 불가결한 것일지 모르지만, 국민부담·국민경제에의 영향 등 보다 높은 차원에서 보면 대폭적인 손질이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 기존관념을 탈피한 대담한 발상전환과 이에 바탕을 둔 예산구조의 개혁 없인 금년예산도 예년의 타성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예산이 곧 국민의 피땀어린 부담이란 점을 한번 더 생각하고 이를 아끼고 효율적으로 쓰는데 보다 머리를 써야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