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솔페리노의 회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5월8일은 세계적십자의 날이다. 적십자의 창시자인 「앙리·뒤낭」의 생일을 기념해 인류평화를 위해 공헌한 그의 업적을 추앙하는 날이기도 하다.
「뒤낭」은 1828년 5월8일「제네바」에서 부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모친은 온화하고 신앙심이 깊은 부인이었다.
그가 자란 「제네바」는 또한 깨끗한 신앙생활을 존중하는「칼빈」주의의 분위기에 묻혀 있는 도시이기도 했다. 「뒤낭」은 그런 좋은 영향들 속에서 일찍이 종교적인 신념과 도덕적인 원칙을 체득한 것이다.
「뒤낭」은 일을 꾸미는데도 남다른 재주와 성의가 있었던 것 같다. 1855년 「파리」에서 제1회 세계 YMCA회의가 열린 막후에는 「뒤낭」이 있었다.
1859년6월 그는 31세의 나이로 인생의 중요한 전기를 맞게 되었다. 그는 우연히 「이탈리아」를 방문했다가 「솔페리노」에서 전쟁의 참상을 목격했다. 그 무렵 「이탈리아」는 왕권계승을 놓고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것은 「이탈리아」의 통일 전쟁이기도 했다.
「뒤낭」은 혈전 장에서 사람들이 너무도 비참하게 죽어 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몸소 팔을 걷고 나섰다. 주민들과 어울려 어느 쪽을 가릴 것 없이 모든 부상병들을 돌보았다 .그의 유명한 저서 『솔페리노의 회상』은 이때의 심정을 서술한 책이다.
그는 이 저서에서 『전시에 부상당한 전투원을 간호할 목적으로 모든 국가에 훈련된 자원 봉사 원들의 단체를 조직하자』는 제안을 했었다.
오늘날의 적십자운동은 바로 이 제안에서 비롯된 것이다.「뒤낭」은「유럽」의 여러 나라를 순방하며 자신의 구상을 설득했다. 호응은 의외로 크고 빨랐다. 1863년에 「제네바」에서 적십자규약이 제정되고, 64년에 나라마다 그것이 체결되고 67년엔 비로소 국제적십자가 결성되었다.
적십자는 「스위스」기에서 유래한 도안으로 오늘날엔 국경·인종·종교의 차별 없이 세계의 어디에서나 그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철의 장막」을 비롯해 세계 1백23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하고 있다.
한반도는 분단 속에서도 남·북으로 나뉘어 회원에 가입되어 있다. 6·25동란과 같은 민족상잔의 비극을 겪으면서도 북한의 적십자는 끝내 정치적 입장만 고집해오고 있다.
그러나 대한적십자사의 병원선 등을 통한 의료활동의 확대, 봉사활동의 강화, 청소년적십자운동 등은 새롭고 값있는 보람으로 자랑할만하다. 「뒤낭」의 정신도 이런 생명존중과 인도주의에서 비롯된 것은 물론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