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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외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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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815년9월「신성동맹」이 이루어졌을 때 독일의 문호「괴테」는 환호를 질렀다.
『지금까지 인류를 위해서 생각해낸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유익한 것』이라고 그는 자기 무릎을 친 것이다.
이 동맹에는 영국의 섭정·「로마」법왕·「터키」황제를 제외한「유럽」의 전군주가 참가했다. 이것은「나폴레옹」타도의 수훈자인 로제「알렉산드르」1세의 구상이었다. 한마디로 「신비주의적인 이상주의」를 바탕으로 한 동맹이었다. 『진실하고도 풀어 질 수 없는 우애정신으로 결합되어 서로 동포로 인정하며 모든 기회·모든 장소에서 서로 원조할 것』을 이 동맹은 약속했다.
그러나 영국외상「캐슬리」와 같은「리얼리스트」는 일각에서 그 동맹을 보고『한 조각의 숭고한 신비주의와「난센스」에 불과하다』고 손가락질을 했었다. 정말 이 동맹은 한 조각 구름처럼 무위하게「유럽」하늘을 배회하다가 끝내는 어디론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우애」나 「정의」또는「평화」를 표방하는 이상주의의 외교야말로「정의 외교」의 한「모델」일 것 같다. 그러나 정치의 현실·국제기류의 불 연속성은 그것이 얼마나 허구이며 한낱 구름과 같은 이상주의인가를 차갑게 교훈하고 있다.
최근 주미한국대사를 사임하고 귀국한 어느 외교관은 한국과 미국의 관계에 있어서도 『동양적인 정의 외교의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그가「정의」라는 말에 다시금「동양적」이라는 수식어까지 얹은 것은 상당한「메타포」(은유)가 있어 보인다.
「동양적 정의」란 우정·의리·덕성·가족적인「모럴」·정숙 등을 생각할 수 있다.
맹자도 비슷한말을 한 일이 있었다. 그는 큰 나라와 작은 나라의 친교를「하늘의 도리」로써 설명하려고 했다. 큰 나라는 하늘의 도리를 즐기는 쪽이며, 작은 나라는 그것을 두려워하는 쪽이라는 것이다. 이것이「정의 외교」의 동양적「룰」이라고 그는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최근의 한미관계를 예리하게 관찰하고 또 체험해온 그 외교관은「정의」아닌「주반」을 더 실감한 것 같다. 「혈맹」이기보다는「국가이익을 의한 한 당사국」으로, 「의리」보다는「실리」로, 「정숙」보다는 따지고 셈하는「시비」로, 「우정의 외교」보다는「기술」로서의 외교」로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변모해가고 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결국우리는 국제정치의 현실이, 더구나 한국과 미국의 현실이, 과거의 집착 아닌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과정에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정치세계에서 변하지 않는 한 가지「룰」이 있다면 그것은「냉혹」인 것 같다. 우리는 뒤늦게나마 그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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