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하)전쟁억지는 가능할까<성병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미 의회 시찰단과 함께 내한한「홀브루크」국무차관보는 75년9월 NYT「매거진」에 『「도미노」함정으로부터의 탈출』이란 논문을 기고한바 있다. 미국이 일본을 제외한「아시아」로부터 손을 떼야 한다는 것이 그 기조였다. 다만 그 과정에서 일본의 방위를 위해 한국의 방위가 필요하다는 지금까지 공인된 대전제가 난처한 문제로 지적되어있다. 이러한 「홀브루크」의 주장은 그가 민주당 행정부에 들어가기 훨씬 전 야인으로서 편 사견에 불과하다.
또 미국 민주당의 두뇌집단으로 정평이 난「브루킹즈」연구소의「랠프·클라프」연구원은 작년 1월에 발간된 저서『한국에서의 전쟁억지와 방위』에서 78년부터 전술 핵·지상군·공군 순으로 주한미군의 점진적인 철수를 제기했다.
완급의 차이는 있으나「홀브루크」와「클라프」소론의 공통적인 기조는 미국이 점차「아시아」대륙으로부터 태평양도서로 군사적 개입을 축소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주한 미 지상군 철수, 아·태 지역 전 적국과의 관계개선 용의 표명, 일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정책 전개 등「카터」미국대통령의 대아정책은 이들의 주장과 상당부문에서 궤를 같이하고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지역에서 성급하게 발을 빼려는 미국의 어떠한 시도도 『스스로 피하려는 사태』를 유발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미국이「아시아」대륙에서 발을 빼려고 한다면 이는「아시아」의 지상전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속셈에서다.
그러나 특히 한국 같은 곳에서 미군의 일방적인 철수는 한반도의 전쟁 억지력을 손상하고 장기적으로 주변 강대국과 관련된 힘의 균형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만일 전쟁이 일어나게라도 되면 미국은 피하려던 전쟁에 휘말리거나 아니면 미국의 대외공신력에 파멸적인 타격을 입게될 것이다. 그 경우 일본만을 확보하면 된다는 가설이 어떻게 타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 일본이 미국의 편에 섰다해서 그때 가서도 일본의 친미 외교기조가 변하지 말란 법은 없다. 더구나 장기적으로 일본의 정국이 반드시 지금 같은「보수본류」에 유리하게만 전개되리란 보장은 없는 것이다.
미국이 한국을 포함한「아시아」대륙에서 물러나면 일본에서마저 장기적으로 군사 기지를 유지할 수 있을는지 조차 문제다.
일본에는 경제대국으로서 핵 군비를 포함한 군사대국화나, 아예 일시적으로 좌경중립을 통해 중·소의 경계심을 둔화하는 두 가지 극단적 선택이 다 가능한 것이다.
이 모두 미국이 추구해온 동북아 안정구도의 해체를 뜻하는 것으로, 미국의 국가이익에 어긋난다.
때문에 주한미군의 철수에 있어선 한반도의 정치·군사적 군형이 파괴되지 않도록 철수의 한계와 방법이 정밀하게 검토되지 않으면 안된다.
우선 전쟁 억지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선 남북한과 미·일·중·소 4강간에 한반도의 평화 구조를 정착시키는 정치·외교적 보장조치가 강구되어야 한다.
또 주한 미군 중 군사적으로 불가결한 요소를 계속 남겨두고, 평소 공수 합동훈련 등을 통해 유사시 미군의 재 진주체제를 확립하는 등 미국의 대한방위공약 준수의지가 과시되지 않아선 곤란하다.
아직 남북한의 군사력만을 놓고 보면 전차·야 포·대공포화 및「미사일」·전투기 등 장비 면에서 수적으로 우리가 충분치 못하다. 그렇지만 북괴의 공격을 방어하기에는 별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의 경제력이 북괴를 압도하고 있어 시간은 우리의 편이다. 전력 증강계획이 완료되는 80년은 전력의 균형이 이뤄져 그후로는 우리가 앞서가게 될 분기점이 되리라는 것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남북한만을 비교한 얘기다. 북괴의 군사력뿐 아니라 소·중공의 적극적인 군사지원이 상정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 소·중공이 북괴를 전폭 지원하는 분쟁 발발은 상정될 수 없는 것일까.
현재로서는 소·중공이 북괴를 부추길 징조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에 있어선 투쟁과 전쟁은 곧 그들의 철학이다. 미국과의 전쟁으로 발전될 위험이 없다고 판단될 때 소·중공이 북괴를 부추기게 될 가능성마저 배제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경우 우리 힘만으로, 북괴에 대해 소·중공까지 상대할 수가 있을까. 그 대답은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강대국이 관련된 분쟁은 국지 정세만을 독립인자로 해서가 아니라 세계적 전략의 일환으로 엉뚱하게 발발되는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북괴의 단독침략을 격멸 할 자주방위력을 갖춘 뒤에도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역할이 계속 배제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전쟁이란 원래 일어난 연후에 격퇴할 수 있느냐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아예 발발되지 않도록 억지 되어야 한다. 때문에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현존이 이 지역에서 전쟁억지와 세력균형의 중요균형자 임에 틀림없는 한 그 조정은 신중에 신중을 요한다.
지금은 억지력의 유지란 차원에서 한미 양국이 허심 탄회한 협력자세를 발휘해야할 때인 것이다. (필자=본사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