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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직격 인터뷰

송호근 묻고 오코노기 답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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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세월호에 안타까운 생명들이 갇혀 있던 지난달 17일 오후 필자는 한·일관계 일본 최고전문가로 꼽히는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 政夫) 전 게이오대학 교수와 마주 앉았다. 악화된 양국 감정이 결국 파탄으로 질주할지 모른다는 긴장이 감돌았다. 해결책을 찾으려면 서로 솔직하자는 전제조건에 합의했다. 오코노기 교수는 일본인의 심정을 그대로 전했고, 필자는 한국인의 정서를 가감 없이 피력했다. 얘기마다 파국에 대한 우려가 짙게 배어 나왔다.

한·일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상황 반전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갈등이 지속될 것인가. 일본의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 오코노기 마사오 전 게이오대 교수(오른쪽)는 “파국은 피해야 하지만 그 가능성은 높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송호근 : 전후 한·일관계가 이렇게 악화된 적은 일찍이 없었어요. 더군다나 양국의 보수정권이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로 무장하는 바람에 잠재돼 있던 역사적 마찰이 표면화되고 정치인들이 그걸 적극 활용하고 있는 중입니다. 양국 공동책임론을 말할 수도 있겠지만, 가해자 일본은 왜 이렇게 되었나요?

오코노기 "박근혜·아베, 위험 부담 무릅쓰고 타협 나서라"

 오코노기 : 무엇보다 국제사회의 구조변화 속에서 일본의 위상이 약화되었다는 상대적 박탈감이 커졌고 한국과 중국의 비판에 직면하면서 내셔널리즘적 경향이 커진 탓이죠.

 송 : 그래도 일본은 가해자 아닌가요 . 역사문제에 대해 한국인들이 분노하는 정도로 일본인도 똑같이 대응하는 것이 온당하냐에 대해서는 좀 안타깝고요. 일본이 큰 나라라고 생각하면 수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코노기 : 일본에서 시민강연을 하면 질문이 옛날하고 많이 달라졌어요. ‘교수님이 하는 말은 결국 한국 사람한테 양보하라는 이야기 아닙니까? 우리만 양보하면 끝납니까?’라고요. 양보해서는 안 된다 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걱정입니다.

 송 : 위안부 문제도 그렇습니까?

 오코노기 : 위안부 문제도 한국인들이 제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동안 협상과정이나 일본의 노력에 대해선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게 현실이죠. 예전에 위안부 문제가 나왔을 때 일본도 공감해서 아시아여성기금을 만들었죠. 일본 정부도 몇 번 공식사과를 했어요. 다만 법적 책임에 대해서는 인정을 안 했던 거죠. 위안부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의 사과와 보상에 만족했는데 지원단체들이 법적 책임을 강조해서 해결이 안 되는 상태가 되었지요.

 송 : 제 생각으로는 사과와 보상도 문제지만 자존심 회복이 더 큰 차원의 문제입니다. 위안부 문제는 인간적 자존심, 휴머니즘, 인간적 가치의 문제로 전환했다고 봅니다. 한국 정부에서 강조하는 ‘개인적 청구권’의 진정한 의미가 그것입니다.

 오코노기 : 아니, 그러니까 일본 정부도 그것은 수용해요. 역대 총리들이 사과한 이유도 그렇고요.

 송 : 그런데 총리가 사과를 안 하시잖아요.

 오코노기 : 총리께서, 그러니까 저희들은 사과를 했는데 한국 측에서 수용 안 한다는 식으로…(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이대로 ‘묻고 가면’ 어떤가, 그렇게 나오는 거죠.

 송 : 그래도 아베 총리와 아소 다로 부총리 발언은 사실 이해하기 힘들죠.

 오코노기 : 저도 이해가 안 돼요, 나는 일본 입장에 서야 하는데(웃음). 아베 정권이 이렇게 된 것, 양국 관계가 악화된 것에는 일본 측 지도자들의 책임도 크다고 봐요. ‘복합골절’이라는 뜻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러니까 한·일관계는 하나만 고쳐서는 될 일이 아니지요. 내년은 더욱 어려워져요. 일본에서는 ‘2015년 문제’라고 하는데요. 내년 6월엔 한·일조약 50주년이어서 아베 담화가 나와야 하고, 4월엔 지방선거, 9월엔 자민당 총재 선거가 있어요.

 송 : 종전 70주년이기도 하고.

 오코노기 : 내년이 그렇기에 한·일관계를 풀기가 아주 어려워요.

 송 : 1960년대 한·일협정과 외교정상화 당시에는 양국 지도자들이 서로 잘 알았는데, 요즘 지도자들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그들이 만든 역사 공간에서 성장했어요. 그 틀에 갇혀 양국 간 적대의식이 점점 커지고 있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2015년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까요?

 오코노기 : 지금이 가장 어려운 시기입니다. 한·일의 양국관계 자체가 새로운 단계로 들어간 겁니다. 세대적으로도 그렇고, 국제관계에도 냉전시대와 전혀 달라지고, 한국에 대한 일본의 경제적 우위도 없어지고요, 그러니까 일본이 수동적으로 변하는 거죠.

 송 : 그 새로운 한·일관계의 핵심은 평화헌법을 지키고자 했던 전후 일본정신을 연장시키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정치적·경제적으로도 너그럽지 않고 한국과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했어요.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장관들의 그런 발언이 계속되면 새로운 관계가 어렵죠. 파탄까지는 안 갈까요?

 오코노기 : 파국은 피해야 합니다만, 가능성은 높습니다.

 송 : 한국은 역사대립과 군사대립이라는 이중적 전선에 둘러싸인 상황입니다. 이에 비하면 일본이 더 여유가 있고 너그러워질 수 있을 텐데요.

 오코노기 : 대통령도 총리도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타협의 길로 나서면 좋겠어요. 가장 어려운 게 위안부 문제인데, 법적 책임을 어떻게 하는가에 대해 양 지도자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서로 국내 반발이 커요. 반발이 나오더라도 타협할 때 더 나아갈 수 있는 거죠.

 송 : 한국의 지도자는 못할 것 같은데 일본 지도자는 어떨까요?

 오코노기 : 못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어려워요.

 송 : 왜 일본은 독일처럼 행동하지 않는가요? 일본이 독일처럼 되지 않는 이유는 중국 때문에 그렇습니까? 아니면 일본 자체에 뭔가가 있어서 그런 건가요? 심리적 피해의식?

 오코노기 : 한국인들이 일본과 독일을 동일시하는 것에 대해 일본 쪽에서는 항상 불만입니다. 식민지주의에 대해서는 그래도 사과하려고 노력하는데…. 영국이 인도와 중국에 사과를 했는가, 프랑스는 알제리 합병에 대해 사과했는가. 그러니까 식민지 청산만 놓고 보면 유럽에 비해 우리가 오히려 잘 하고 있는 건데요. 전쟁 문제는 좀 다르죠. 물론 일본도 비인도적인 짓을 많이 했지만 히틀러가 한 것과 비교하기는 좀 그렇다는 거죠. 두 번째는 독일이 그 책임을 히틀러와 나치스에 돌리고 사과하는 것이지 민족의 이름으로 사과하지는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전범들이 나쁘지 일본 사람 전체가 나쁜 게 아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데, 일본인들은 바보라서 그렇게는 말 안 해요.

 송 : 바보니까 안 하는 거예요? 아니면….

 오코노기 : 사고방식이 달라요. 일본 사람 전체의 책임이지 몇 사람 책임이라고 말을 안 하죠.

 송 : 그 가운데에 천황이 있어서 말을 못하는 것 아닐까요?

 오코노기 : 천황이라기보다는…. 섬나라이기 때문에, 섬나라 사람들이 ‘이 사람은 나쁘고, 이 사람은 나쁘지 않다’는 식으로는 안 하지요. 독일 식으로 군국주의자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거죠.

 송 : 굉장히 중요한 지적인데요, 그걸 한국인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지요. 사실 유럽의 식민주의와 일본의 식민주의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유럽은 말 그대로 콜로니고요, 일본은 강압적 점령이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으로 내몰았지요, 중국과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을 징용, 징발을 했는데 그걸 직시한다면 독일처럼 돼야 하지 않는가라는 게 한국인의 심정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집단으로 생각합니다’라는 지적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오코노기 : 군국주의자들의 책임으로 돌리면 해결하기 아주 쉬운데요. 야스쿠니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들을 분리해서 신사에서 폐쇄하면 되는데 그거 안 하고 말이에요.

 송 : 야스쿠니보다 지도리가후치(千鳥ヶ淵)를 국립묘지로 만들면 어떨까요?

 오코노기 : 나는 그게 낫다고 봐요. 그렇긴 한데 역시 야스쿠니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있어서….

 송 : 한·일관계에 미래지향적 해법을 제시한다면?

 오코노기 : 상대방이 포용할 수 있는 한도 이상을 요구하면 좋은 관계를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일본이 가해자이긴 하나 포용 한도를 넘지 않았으면 합니다.

 송 : 저는 두 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일본인들은 아이를 키우면서 메이와쿠(迷惑, めいわく), 폐를 끼치지 마라는 얘기를 자주 하잖아요. 커뮤니티에서는 작동을 하는데, 왜 이웃국가에 대해서는 작동하지 않을까요. 다른 하나는, 전쟁이나 식민지의 기억이 잊히려면 한 100년이 걸린다고 보면, 일본인들은 더 참고 치유를 도와야 한다, 그런 면에서 더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오코노기 : 한국과 일본이 해야 하는 두 개의 역할이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가교역할, 경제적으로는 아시아 전체의 경제적인 통합과 협력을 주도해야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일본은 강대국이 아닙니다. 중간적 역할을 해야 하는 나라예요.

 송 : 일본은 강대국이 아니다?

 오코노기 : 사실은 일본 국민들이 강대국이 되고 싶다, 수퍼 파워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평화적인 나라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 왔죠.

 송 : 4강이 아니라 3강 2중이군요. 좋으신 말씀인데, 6자회담은 북한 핵 문제와 동아시아 평화 문제를 동시에 다뤄봤으면 좋겠다고 봐요. 한·중·일에 대해서는 제주도쯤에 3국이 언제든지 만나서 얘기할 수 있는 미래평화구상위원회라고 할까요, ‘미래협력구상 3국회의’를 결성해서 대표와 특사가 계속 얘기하고 문제를 풀어나가면 어떨까 합니다. 일종의 한·중·일 역사비무장지대를 제주도가 아니더라도 어딘가에 설치해서 상시적으로 가동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인터뷰 후기
한반도 상황에 해박한 전문가, 일본 입장도 살펴달라 호소

일본의 지한파 지식인이 요즘 그러하듯 오코노기 교수도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최악으로 치닫는 한·일 관계가 파국을 맞을 가능성이 고조된 지금 돌파구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대목에서는 헛웃음을 지었다. 양국 지도자가 역사 마찰과 영토분쟁을 이 상태로 동결하는 ‘통 큰 타협’이 최상의 해법이지만 부활한 민족주의 앞에 그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위안부 문제의 ‘법적 책임’은 결국 파국을 재촉하는 폭발성 쟁점이다.

 ‘너무 몰아세우지 말아 달라!’-지한파 지식인들의 공통된 주문이다. 그런데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인정했듯이 ‘끔찍하고 지독한 인권침해’를 왜 공식 인정하지 않는가라는 한국인의 즉각적 반응은 사실 분노에 가깝다. 그 분노는 독일과 대비해 더욱 증폭되기 마련인데 일본인들은 이런 대비를 납득하지 못한다고 했다. 섬나라 사람의 심성은 다르다고 했다. 한국인이 위안부 문제를 거듭 거론하는 것과 일본인들이 납치인을 송환하라는 거듭된 대북한 요구 간에는 상동관계가 존재하는 듯이 보였다. 일본은 이미 강대국이 아니라고 힘줘 말하는 오코노기 교수의 확인 속에는 일본의 입장도 좀 살펴달라는 호소가 엿보였다. 한·일 관계는 가해자의 위축된 심리까지를 배려해야 풀리는 아주 특이한 문제다.

오코노기는 …

일본을 대표하는 한반도 전문가다. 남북한 모두의 정치·외교에 대해 그만큼 해박한 일본 학자는 찾기 힘들다. 한국 학계는 물론 정·관계, 언론계에 마당발 인맥을 갖고 있다. 한·일 관계와 관련해선 파이프라인 역할을 해왔다. 한·일공동연구포럼의 일본 측 좌장,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일본 측 위원장을 역임했고, 각종 위원회에서 활약했다. 1978~2011년 게이오대 법학부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게이오대 명예교수와 한국 동서대 석좌교수. 고이즈미·후쿠다 내각 때는 일본의 중장기 외교전략을 짜는 총리 자문기구 위원을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