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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전쟁과 평화, 모두가 고객" 벨기에 병기공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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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올림픽 사격대회 석권>
「벨기에」제3의 도시「리에지」교외「헬스탈」마을에 묘한 이름의 주식회사 FN이 있다. FN은 국립제작소의 불어 약자로 외국인에게는 무엇을 만드는 곳인지 전혀 알 길이 없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브라우닝」연발총이나「모제르」권총 등을 만드는 공장임을 모두가 알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소총·기관총을 만들어「나토」군 뿐만 아니라 40여개의 보병과 기계화 부대를 무장시키고 더욱 75∼76년간「몬트리올·올림픽」을 비롯한 16개 각종 사격대회에서 총 26개의 금「메달」을 석권시킨「스포츠」용 총을 만든 공장이다.
삼엄한 검문 검색을 예상했지만 섭외부「뒤무렝」씨의 친절한 영접으로「코피」대접을 받으며「슬라이드·브리핑」을 듣는 영광(?)을 얻었다. FN은 현재 2천년 때의 사냥총이라는「브라우닝」2000을 개발한「스포츠」부, 구경7·62사의 MAG58과 5.56㎜의 최신형 기관총이 미군에 채택되어 전망이 밝은 군사 무기부, 전투기「엔진」을 제작하는「모터」부가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중 교훈적인 면은「엔진」제작이었다. 『30년전 국방성에서 창설했지요. 비행기 값은 비싸지만 하늘은 지켜야지요. 영국의「그로스타」쌍발기를 구입하는 대신에 1천4개의「엔진」을 우리가 만들기로 한 것입니다.』
한국이 전쟁에 시달리고 있던 50∼54년의 일이라는「뒤무렝」씨의 설명. 55∼59년까지는 영 전투기「헌터」의「엔진」6백35개를 공급했다. 더욱 61∼68년에는 미국의「스타파이터」F-104의 것을 1천2백개나 만들어 공급, 현재「벨기에」뿐만 아니라 서독·이태리·화란의 영공을 지키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
또 지난 70년부터 4년간은「프랑스」의「미라지」「엔진」을 1백31개 공급했고 작년부터 8년 계획으로 미국의 F-16전투기「엔진」을 총1천4백57개를 제작할 예정.
『작년에 세계가 떠들썩했던 미국의 F-16과「프랑스」의「미라지」기가「벨기에」·화란·「노르웨이」·「덴마크」4국의 신예기 대체를 둘러싼 판매 싸움에서 미국이 승리한 이유가 여기에 있읍니다. 4국에 필요한 4백50대외에 제3세계권의 7백13개와 미국 자체용 3백94개를 FN에 제작 의뢰한 것이지요. 작년 8월 우리는 미국의「프라트·&·휘트에이·그룹」과 계약했는데 4백명의 고급 기술자와 2천 여명이 새로 직장을 얻게되고 F-16을 사는 외화 낭비를 줄이고…. 그리고 자동「카빈」등 새로운 소총과 기관총은 따로 수출하고…』
『연간 얼마나 수출합니까?』「벨기에」특유의 붉은 벽돌 건물인 공장 내부로 안내 받으며 물었다. 무기는 수출통계에서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 천2백정을 생산>
약간 주저한「뒤무렝」씨는「스포츠」와 군사용 총의 1일 생산량은 평균 1천2백여대입니다. 정확히 1만44명의 종업원이 있읍니다. 생산의 10%정도만이 내수용이지요. 75년7월∼76년6월까지 약81억「벨기에·프랑」(2억2천만「달러」)어치를 수출했읍니다』고 시원하게 대답했다. 그가 처음 안내한 곳은 총 기능 검사실이었다.
밖에서 전혀 소리가 안 들렸으나 실내에 들어서자 총성이 고막을 찢는 것 같았다. 수만대의「브라우닝」사냥총을 발사해 봄으로써 시험하고 있었다. 「스포츠」형의 총신에 조각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공정이 기계화 되어있었다.
이곳에서 나오는 총은 권총 10여종, 「스포츠」용 9종을 포함 40여중에 이르며 특히 이곳에서 처음 만든「브라우닝」은 1900년이래 3백만대를 팔았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이들의 총 제조술은 10년, 20년 계획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5세기의 장구한 전통을 지녔다.
12세기 석탄광의 발견과 주변 강대국에 낀 지리적 조건은「리에지」시를 공업도시로 형성시킴과 동시 무기 상인들의 집중지로 만들었다. 총을 발명한 사람들이 이곳에 몰린 것은 영·불·독의 왕이나 영주들에게 팔기 쉬운 위치라는 점과 철공술의 발달 및 원자재의 풍부함 때문이었다.
17세기에는「루이·드·기어」가 최초의 합자회사를 설립했으며「프랑스」의「루이」14세의 단골 상인으로「아드리안·레이니에」가 이름을 날렸다. 그의 권총과 소총은 오늘날까지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특히 총신의 금 조각으로도 유명했다. 이밖에도 영군, 독일의 왕자들과「스페인」「포르투갈」왕들이 주된 고객이었다.

<「나폴레옹」도 단골>
1788년에는 80여개 무기제조 상인들이 20여만정을 팔아 4백만「프로린」을 벌 정도였다. 불 대혁명 때 시민들이 공화군에 가담, 혼란통에 멸망의 위기를 겪었으나 14명의 기술자들이 최초로 수발 총의 규격화로 극복했다. 「나폴레옹」은 오히려 무기 생산을 장려, 1815년부터 1백년간 황금기를 맞은 것이 오늘의 FN을 낳은 역사적 계기가 되었다. 「폴시트」라는 천재가 1807년 격발총을 발명함으로써 막을 올린 총 제조술은 1820년「코리에」의 연발권총, 35년「마리에트」의「콜트」, 60년「스펜서」의 연발총, 89년「크레르」형제의 자동총을 낳았다.
이같은 기술의 발전에 발맞추어 분업화가 이루어졌으며 다시 1886년 최초로「무기제조연합」을 만들어 FN의 모체를 이루었다. 2년 후「벨기에」정부는 15만대의 연발총을 이 연합에 주문했다.
연합은 주문에 대기 위해 즉각 모든 제조업자들을 모아 주식회사「전쟁무기전국제작소」를 창설, 드디어 FN이 탄생한 것이다. 이 회사는「리에지」시에서 10㎞지점의「헬스탈」지역에 공장을 건설, 1893년에 이미 하루 2백50대의 총, 2만개의 탄통, 2만5천개의 실탄을 생산했다.
회사 설립이 각 신문에 보도되자 중국·「브라질」·「노르웨이」·「코스타리카」·제정「러시아」등에서 무려 60만대의 주문을 받았다. 이때 사냥총과 자동차·자전거 생산으로 사업을 확장, 이중 자동차 산업은 오늘날 전투기「엔진」제작으로 발전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FN이 성공한 이면에는 미국의「브라우닝」의 공적이 숨어 있었다. 그는 1897년 구경7· 65사의 자동권총을 발명, 미국에서 인정받지 못해 FN에서 1899년 처음으로 만들어 냈던 것.

<우리기술은 영원하다>
「벨기에」군은 이를 정규군에 장비 시켰고 1902년에는「브라우닝」이 직접 FN을 찾아와 자동엽총 설계도를 내놓았다. 바로 이것이 유명한 5연발「브라우닝」엽총으로 1907년 그의 이름을 독점할 권리를 위임받아 무려 3백만대나 수출한 것이다. 오늘날 이곳에서 만드는 모든 권총과 엽총에는「브라우닝·마크」가 새겨져 있으며 회의실에는 그의 동상이 서 있다.
『1차 대전 때는 독일군의 징발에 저항했고 2차 대전 때는「프랑스」의「투르즈」로, 다시 영국으로 피난 갔다가 해방된 후「나치」군의 V1과 V2공격을 받아 완전히 파괴당한 비극도 겪었읍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5백여년간 갈고 닦아 온 기술만은 부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결론에 여담이라고 전제, 『FN은 세계의 어디인가 분쟁이 있어야 활기를 띠지 않는가?』라고 물어 보았다. 「뒤무렝」씨는『그래서 우리는「스포츠」총 등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습니다. 「브라우닝」2000의 대량 생산체제를 갖추고 있지요』라고 응수했다. 그러나 지구상에 영원한 평화가 보장될 수 없는 한 FN은, 이 나라의 보이지 않는 부원임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

<벨기에 현황>
▲인구=9백80만명
▲면적=3만㎞
▲GNP=6백44억「달러」(75년)
▲1인당 GNP=5천4백70「달러」(75년)
▲수출=2백88억「달러」(75년)
▲수입=3백7억「달러」(75년)
▲외환보유고=58억「달러」(75년) <글 주섭일 특파원·사진 이창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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