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이선미<연세대교수·평론가>|조해일<소설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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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조=이달에 화제로 삼을만한 것은 아무래도「현대작가 신작선」5권인 것 같아요. 그 가운데서도 저는 박태순씨의『가슴에 남아있는 미처 하지 못한 말』을 특히 감명깊게 읽었는데요. 그러나 그 작품들의 분량이나 중요성에 비추어 이런 자리에서 가볍게 몇 마디로 언급하기엔 좀 외람된 느낌이 듭니다. 보다 본격적인 비평의 장소에서 다루어져야겠지요. 다만 기획의 참신성은 높이 평가해야 할 것 같아요. 이달에 발표된 작품 중에서는 윤오길씨의『수청과 말홍』(한국문학)을 주의 깊게 읽었읍니다.
이=허위 사회에 대한 고독한 도전을 예리한 분별력과 산뜻한 분장으로 그린 수작이지요. 결코 존경받을 수 없는 사경의 우하사로 하여금 광란에 가까운 전우애에 의해서 포상을 받게 하는 흐름, 그 커다란 허위의 세력에 끝까지 맞서는 선하사의 성실한 싸움이 긴장감을 돋워 줍니다.
조=우리 작품의 근래의 한 수확으로 꼽을 만 하지요. 고도로 세련된 문체와 빈틈없는 구성, 그리고 우리가 흔히 거기에 빠져 있으면서도 자각하기 어려운 어떤 눈먼 흐름을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뭏든 우리의 자신을 다시 한번 반성해 보게 하는 작품이예요.
이=최일남씨의『너무 큰 나무』(문학사상)도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이 작품은 사회 명사의 위선과 허위를 완곡한 문체로 비판하고 있어요. 가정부 눈으로 본 명사 주인의 가늠할 수 없는 정체를 펼친 것으로, 이를테면 밖에서는 입만 열면 국가·민족을 떠드는 사람이 집에 들어오면 그렇게도 천박하고 무식하며 위선적이고 옹졸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지요.
조=사회적 삶에 있어서는 짐짓 양식있는 태도를 견지하지만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는 지극히 비속하기 짝없는 한 명사의 허위를, 한 순결한 눈을 가진 가정부의 관찰을 통해 묘사하고 있는데 우리 사회의 있음직한 이야기가 아닙니까.
이=번역 작품이기는 하지만「세계의 문학」에 소개된 재일 작가 김학영씨의『겨울의 빛』도 이야기가 돼야 할 작품인 것 같아요. 돌아갈 곳 없는 재일 한국인의 울분과 슬픔이 차분하고 치밀한 문체로 탁월하게 형상화되고 있어요.
특히 아버지의 노여움, 그 근원에 재일 한국인의 고난의 역사가 있고 또 그 역사는 그들의 조국인 한국의 역사와도 긴밀히 이어진다는 데서 이 작품의 무게가 한층 돋보입니다. 계간지에 발표된 작품으로는 박태순씨의『벌거숭이산의 하룻밤』(창작과 비평)도 주의 깊게 읽었는데요. 젊음 때문에 꼼짝 못 하고 바보가 돼 버린 청년 자신과, 낙천적인 겉보기와는 달리 세상에 깊이 실망한 중년과, 그리고 부과된 역사적 자각은 가졌지만 그 실천은 고사하고 기성 질서에 동화돼 버린 30대 장년의 고민과 문제를 제시하고 있어요.
조=재미 여류작가 박시정씨도『새들은 일하러 가지 않아요』(문학사상)를 발표했는데요. 이 작품은 부모가 직장에 나가는 시간 동안 탁아소에 맡겨지는 어린아이의 심리묘사를 통해 미국사회 외도는 현대사회의 합리적 비정성을 그리고 있어요.
이밖에 김문수씨의『우남이』(문학사상), 문순태씨의『고향으로 가는 바람』(월간중앙), 전상국씨의『맥』(현대문학)등이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었읍니다.
이=『우남이』는 불행한 사람의 한 소망을 밀도 있게 그린 작품이며『맥』은 자기근본을 잊지 못하는 마음을 감격적인 억양으로 표현한 작품이지요. 두 작품 모두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좋은 작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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