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45분 회담의 여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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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박 장관이 가진「브라운」국방·「밴스」국무장관 및「카터」대통령과의 회담은 예외 없이 하나씩은 이례적인 데가 있었다. 「브라운」과의 회담은 외무장관과 국방장관과의 회담이라는 것이 주목을 끌었다.
「밴스」국무장관과의 회담에서는 박 장관과「밴스」장관이 양쪽 대사들을 배석시키지 않고 36분 동안 단독 회담을 가진 것이다.
박 장관과「밴스」장관이 앞으로 다시 만날 필요가 있다는 합의를 한 사실, 늦봄까지는 미국이 철군안을 한국 정부에 제시하겠다는 등의 의사가 이 자리에서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특파원들이 땀을 흘린 것은 아침부터다. 「카터」가 10시 기자회견에서 주한미군 철수에 관해서 답변을 하는 가운데『나는 한국이 북괴의 침략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위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지배하는 적절한 규모의 지상군이 한국에 남는 것을 바란다』고 말했다.
AP통신이 재빨리「카터」는 적절한 규모의 미국 지상군을 한국에 잔류시키겠다고 말했다고 오보를 냈다.
결국 백악관은 그것은 한국 지상군을 의미한다고 추가 설명을 하고 AP는 정정기사를 느지막하게 내보냈다. AP의 그런 오보는 한국을 위해서는 오보가 아니었으면 싶은 그런 종류의 기사였다.
크고 작고간에 회담이 끝나고 나면 내용을 어느 정도 기자들에게 발표할 것인가가 항상 문제다.
한국측의 주장에 따르면 박-「카터」회담에 대해서는 다음의 4가지만 말한 사람의 이름을 밝히는 소위「존·더·레코드」로 발표하기로 했다.
①양국의 공동 관심사를 논의했다. ②「카터」대통령은 한미 우호관계를 재확인했다. ③「카터」대통령은 한국의 눈부신 경제 성장과 한국 사람들의 부지런함을 찬양했다. ④주한 미군의 철수에 관한 협의 시기에는 합의한 것이 없다.
그래서 한국 소식통은 이들 4가지 말고는 모두 북경 설명의 형식으로 한국 기자들에게 내용을 알렸다. 그러나 마감 시간에 쫓기는 한국 석간지 특파원들이 대사관을 숨차게 뛰쳐나갈 무렵 박-「카터」회담에 관한 백악관의 발표가「로이터」통신으로 보도됐다는 사실이 박동진 장관에게 보고했다. 백악관 발표에는「카터」대통령이 한국의 인권에 관심을 표명했다는 구절이 들어 있었다.
박 장관과 함병춘 주미 대사는 이것은 약속 위반이라고 말만 하고『그렇다면 우리도…』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면서 뒤쳐진 일부 기자들에게 추가 설명을 하고 외무부를 통해서 발표를 내 보냈다. 그렇게 해서 추가된 것 중의 하나가「카터」대통령이 인권 문제로 한미 우호관계에 그늘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카터」기자회견, 박-「카터」회담이 끝나고부터『4년 내지 5년간의 기간이 적절하다』는「카터」의 철수 기간을 두고 양론이 있다.
한국 관리들은 철수가 시작되고부터 4년 내지 5년에 걸쳐서 미 지상군을 철수한다는 의미로 믿고 반대론을 펴는 사람들은 가까운 장래에 철수를 시작하여 4년 내지 5년까지는 철수완료 한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소식통에 의하면 박 장관과「카터」대통령이 대좌하고 바로「카터」가 말문을 열어 철수 결정을 설명했다.
그리고 인권 문제는 마지막에 언급됐다.
「카터」의 말이 끝나고는 거의 일방적으로 박 장관의 설명이 시작됐는데「카터」는 미소를 짓고 경청을 하고만 있었다. 그 자리에는 미국의 정책을 결정하는데 책임을 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배석하고 있었지만「카터」와 박 장관 말고도 다른 사람들은 45분 동안 한마디도 거들 틈이 없었다고 한다. 【워싱턴=김영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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