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주도의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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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4일 중앙청에서 열린 76년도 종합심사 분석 보고에서 평가 교수단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경제 운영에 있어서 민간부문의 참여를 점차 확대하여 민간주도형 경제로 전환하고 시중은행 경영의 자율성 제고와 대형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건의를 했다.
60년대 후반기부터 시작된 한국경제의 고도성장 과정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정부였고 또 그 때문에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규모가 커지고 그 구조가 복잡, 다양화해지면 정부 주도는 한계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경제도 이제 계속 정부주도로 이끌고 가기엔 그 규모가 너무 커 버린 것이다. 따라서 경제운영에 있어 민간 부문의 참여폭을 넓혀 민간 주도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은 필연적인 추세라 볼 수 있다. 민간 기업가의 창의적인 경제활동이야말로 자유경제체제의 대를 보이며 원동력인 것이다.
정부의 경제계획이 아무리 치밀하고 과학적이라 해도 거기엔 비능률과 경직성이 따르기 쉽다. 경제의 능률이나 생산성은 민간의 끊임없는 창의와 경쟁을 해서만 얻을 수 있다. 물론 경제개발의 초기엔 정부의 시동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경제개발의 시동이 일단 걸리고 경제에 자체 추진력이 생기면 민간 주도에 의한 경쟁체제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국제 경쟁력을 기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민간주도형 경제가 돼야 한다는 것은 이제까지 정부 스스로도 누차 강조했고 또 4차 5개년 계획의 기본 방향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평가 교수단이 다시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정부의 구호와는 달리 정부의 인식이나 자세가 아직도 미흡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을 시은 경영에서 볼 수 있다.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시은 경영쇄신과 금융 정상화를 다짐해 왔다.
그러나 정부의 다짐대로 시은 경영이나 금융 풍토가 크게 개선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에 대해선 선뜻 수긍하기 힘들다. 오히려 더 나빠지고 있지 않느냐 하는 생각마저 들 때가 많다.
사실 은행이 경영이나 새로운 경제 조류의 흡수 및 적응 상태에서 일반 기업보다 앞서가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요즘은 오히려 낙후된 느낌을 주고 있다.
민간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대형화·국제화를 이룩하고 있는데 반해 은행은 이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상이다.
그 원인을 따지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역시 자율성의 미비와 경쟁의 부족에 있는 것 같다.
은행이 스스로 상업「베이스」에 의해 자율경영을 할 여건이 안되어 있으니 참된 경쟁과 또 이를 바탕으로 한 창의와 고능률이 생길 수가 없다. 정부는 현 관주비 금융체제 아래서라도 시은들이 서로 경쟁을 하여 창의적 혁신을 이룩토록 요구하고 있으나 그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창의적 혁신이나 고능률은 사활이 걸린 경쟁과 상업「베이스」에 철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같은 정부 지배의 은행끼리, 주로 정부의 판단에 의해 제한된 경쟁을 하면서 무슨 획기적인 경영 쇄신이나 금융 정상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근본여건이 같은 한 고질적인 시은의 무책임·방만 경영은 여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근본적인 치유의 길은 은행경영의 자율성을 대폭 높이는 것이다.
이러한 자율성의 제고는 현재와 같은 정부 지배 체제 아래선 지난한 일이므로 결국 민영화 문제로 귀착된다.
물론 민영화가 최선의 방도도 아니며 문제도 많다.
그러나 현재의 방식으로 금융 정상화나 대형화가 어려운 것이 명백한 이상, 차선의 방도라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은행경영의 쇄신이나 금융 풍토의 정상화, 더 나아가 민간 주도형 경제는 구호나 다짐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 기능을 바탕으로 한 자유 경제체제의 우월성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인식과 그 인식에 바탕을 둔 실제 행동을 대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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