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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률 17.2%의 의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오진률 아직도 높다니 서울대의대경우 17·2%」의 신문기사에 대해 일반국민은 물론 의료인까지도 충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나는 이 결과를 발표하면서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점은 의료인들의 비판이나 제자들의 실망이 아니다. 오로지 환자들의 의사에 대한 신뢰감이 없어질 것을 염려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두려움에 앞서 자신과 긍지를 갖고 이 결과를 발표할 수 있었다.
달세계를 여행할 정도로 또 그 이상의 놀라울 만한 과학이 발달된다 하더라도 신이 창조하신 인간의 오장육부와 같이 신비스럽고 섬세한 것은 앞으로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며 이러한 인간에게서 생기는 병을 1백% 정확히 진단을 내린다는 것은 아무리 노력하여도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어떻게 하면 오진을 적게 하느냐가 문제라고 본다.
도대체 오진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사람에 따라 그 기준은 다를 것이나 진단을 잘못내림으로써 치료기간이 길어지고 또 환자의 예후를 악화시켜 때로는 죽음에 이르게까지 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오진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오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거의 모든 개업의사가 보험에 들어있는가 하면 귀찮아서 개업을 포기하든지 또는 진료과목선택에도 신경을 쓰는 형편이다. 필자가 발표한 오진의 기준은 그러한 좁은 의미의 오진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위암이라고 진단하여 외과로 보낸 환자가 수술결과 위암에는 틀림없으나 인접장기인 간이나 췌장에 전이를 일으켰을 때에, 또는 유문협착증(밥통이 좁아지는 병)이라는 진단 하에 개복하여 유문이 막혀 있었으나 그 원인을 기록하지 않았을 때, 혹은 간암인데 수술해보니 경한 간경변증 변화가 함께 발견되었을 때에도 우리들은 오진으로 간주했다. 이상과 같은 기준은 으뜸 되는 병명에는 틀림이 없고 또 질병의 예후나 치료를 하는데 별로 영향을 주지 않아 일반상식으로 생각한다면 오진으로 판정하는 것은 좀 가혹한 기준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엄격한 기준을 내려 구별했기 때문에 17·2%라는, 다시 말해 6명 진찰하여 한사람은 진단이 틀렸다는 엄청난 수자를 보이는 결과가 되었다.
악성종양인 위암을 위궤양으로, 췌장염을 암으로 오진하는 따위의 어떤 의미에서는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될 만한 상식적으로 풀이되는 오진률은 단 10%도 못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엄격한 기준을 삼아 높은 오진률을 보이게 하여 일반국민을 놀라게 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공부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항상 엄숙하고 과학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기준을 엄격하게 삼는 것이다.
특히 귀중한 생명을 다루는 의학에서는 고만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환자에게 고통을 주지 않도록 노력하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성실하고 엄격한 사고방식 하에 환자의 진료나 의학교육에 임하는 것이 의료인의 자세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엘리트들이 모여있는 대학인들의 사명이지 않겠는가.
필자는 5년전(66∼70년) 같은 방법으로 조사하여 29·7%라는 높은 오진율을 발표하여 세상사람들을 놀라게 한 일이 있다. 과거 5년간에 29·7%에서17·2%라는 낮은 오진률을 보인 원인을 분석하면 여러 요인을 찾아볼 수 있으나 5년 동안의 의술의 발달로 또는 새로운 의료기구의 사용에 의한 것으로는 보지 않으며 도리어 그것보다는 의사들의 성의와 노력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환자들은 자기 몸을 맡길 때 병원의 시설을 운운하는 수가 많으나 그것보다는 어느 의사가 성심 성의껏 봐주느냐를 기준으로 하여 병원선택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끝으로 오진을 막고 정확한 진료를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부검이라고 하겠다.
외국과 같이 사인을 구명하기 위하여 의사가 원하기만 하면 무조건 사체 해부에 응해 주는 나라에서는 부검으로 완전히 사인을 구명할 수 있어 앞으로의 진료에 크나큰 도움을 준다.
독일 일본의 의학이 발달된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바로 이 부검이다. 즉 독일은 거의 1백%, 일본의 경우에도 평균80%이상(동대의 경우 90%내외)의 높은 부검률을 보이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신생아를 포함하여 단지 5%내외밖에 되지 않으니 이러한 상황하에서 어찌 얕은 오진률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에서는 유산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알 수 없으나 부검은 두번 죽는다고 유가족들이 절대 반대다. 외국과 같이 부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이 나라 의사들은 환자 한사람 한사람에게서 진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이문호<서울대교수·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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