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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업에도 살인죄 적용 추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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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규모 인명피해를 유발한 기업·단체에 살인죄를 물을 수 있을까. 최근 일본에서 대두된 질문이다. 일본 도쿄신문은 철도 등 대중교통 사고, 원전 사고 발생 시 기업·단체에 형사 책임을 묻는 ‘조직벌(組織罰)’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28일 보도했다.

 인명피해 사고가 나면 이를 책임져야 할 기업 혹은 조직은 형사상의 책임을 면하는 경우가 많다. 소송 과정에서 조직의 문제가 드러나도 누가 이를 책임질지는 모호하기 때문이다. 특히 의사결정 과정이 복잡하고 직무가 나누어져 있는 거대 조직에서 책임을 가리는 일은 더욱 어렵다. 결국 개인 몇 명에 대한 형사처벌과 기업의 민사상 배상으로 끝나게 된다. 조직벌은 이럴 경우 해당 기업 혹은 조직이 형사상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다.

 일본의 조직벌 도입 논의 중심엔 2005년 4월 25일 효고(兵庫)현에서 발생한 JR후쿠치야마선 열차탈선 사고 희생자 유족들이 있다. 열차 지연 운행에 부담을 느낀 기관사가 곡선 구간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아 발생한 이 사고로 107명이 사망했으며 560여 명이 다쳤다. JR 사상 최악의 사고였다. 이후 후쿠치야마선의 책임을 맡았던 JR의 전직 사장 등 책임자들은 형법상 과실 치사·상 혐의로 기소됐지만 2012년 법원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피해자들은 재판 과정을 보고 형법 개정 목소리를 내게 됐다고 도쿄신문은 전했다.

 유족들은 지난달 연구회를 발족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범죄가 ‘의사를 가진 사람의 행위’로 규정돼 있어 무생물인 법인은 처벌할 수 없다는 형법 원칙이 개정돼야 한다는 점 등을 지적하고 있다. 앞으로 야마나시(山梨)현 터널 붕괴 사고(2012년),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2011년) 등 다른 대형사고 피해자들과 연대할 계획이다.

 일본에서 논의되는 조직벌은 영국이 2007년 도입한 ‘기업 살인죄(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를 참조한 것이다. 이 법에 따르면 사고를 낸 조직에 살인죄 등 형법을 적용해 거액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역시 거대 기업에서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도입된 법이다. 경찰·교도소·청소년보호소 등 국가 조직의 책임을 묻는 데에도 적용할 수 있다.

전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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