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괴의「정치협상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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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괴가 25일에 제의한「남북 정치협상회의」는 박 대통령의 1·12 제의를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우리측의 대북 제의가 있으면 보통 3, 4일 안에 반응을 보이던 북괴가 13일이 지난 뒤 이런 식의 간접거부를 한 것은 1·12 제의를 정면 반대하는데서 오는 불리를 감안했기 때문인 듯하다.
북괴의 「남북 정치협상회의」 제의는 그들의 소위 「정당 및 사회단체 연석회의」에서 한국의 정부가 아닌 국민들에게 보낸 형식으로 되어있다. 내용도 ①통일을 지향하는 남북한민주역량의 대 연합 ②남북한의 긴장완화와 핵전쟁의 위험제거란 상투주장에 곁들여 ③남북정치 협상회의의 개최를 내세웠다.
이러한 북괴 측의 제의는 종래 그들의 이른바 「대민족회의」 개최 주장에서 일보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다만 분식된 것이 있다면 정면으로 대화를 거부함으로써 국제적으로 입을 비난을 면하기 위해 대화를 부정하지 않는 듯한 가장을 한 것뿐이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분식을 해도 저들의 이러한 주장은 남북대화의 부정임이 분명하다. 「남북 정치협상회의」라 하면 저들이 1948년 김구 선생 일행을 맞아 협상 사기극을 벌이던 이래 줄곧 원용되어오던 퇴물에 불과하다. 남북한 관계에서 저들이 내세우는 정치·군사적인 정교한 문제가 어찌 수백 명이 모인 궐기대회 식 회의에서 다뤄질 수 있단 말인가.
이는 중공과 월남의 경험에서 보듯이 상대진영을 분열시키려는 공산주의자들의 전통적인 통일전선 전술의 재판일 뿐이다.
북괴가 진정 남북한간의 대화와 이를 통한 민족의 평화통일을 원한다면 이미 마련된 남북 조절위와 남북적십자회담 「채늘」을 보완하여 활용해야지, 이를 파괴하려 해서야 되겠는가.
한마디로 북괴의 「남북 정치협상회의 제의」는 남북대화란 차원에서는 별다른 의미가 없고, 앞으로 그들의 위장 평화공세가 강화되리란 조짐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우선 그들의 이러한 역 제의가 북괴수상 박성철의 「모스크바」 방문과 때를 같이해 나왔다는 데 유의해야겠다. 박의 「모스크바」 방문에서는 파탄상태에 이른 북괴의 경제문제와 함께 「카터」 신임 미 대통령의 단계적 주한미군 철수공약과 관련, 주한 미군 철수촉진이 가장 큰 관심사로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주한 미군 철수를 촉진하자면 북괴가 덜 위험한 존재라는 인상을 외부에 줄 필요가 있다는데서 그들이 위장평화 공세란 간계를 쓰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측되던 일이다. 「남북 정치협상 회의」 제의는 이러한 위장평화 공세의 또 다른 시작이라고 보아 틀림없다.
뿐만 아니라 이 제의는 한국의 내부를 이간시켜 현 체제를 흔들어 보려는 저의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남북의 각 정당·사회단체를 회동시킨다는 형식과 민주역량의 대 연합 촉구의 명분을 빌어 현 체제에 어떤 바람을 집어넣으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이러한 북괴 측의 대내외적인 새로운 정치·외교공세에 당면해 우리는 우선 내부적으로 경각심과 국민적 단합을 굳건히 해야겠다. 동시에 북괴의 보다 극렬한 위장 평화외교를 능가할 수 있도록 우선 우방에 대한 외교부터 더욱 강화가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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