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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마다 새 사람되면 낙원이 눈앞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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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요즈음 거리에 나서면 성탄을 알리는 「징글·벨」 소리며 문방구점에 걸린 연하 「카드」들이 세모의 풍경을 한결 짙게 해주고 있다.
세속의 한해가 또 저문다는 아쉬움이 서린 눈망울들을 대할 때마다 수도인으로서의 자신을 다시 한번 의식해 본다. 가고 오는 세월은 도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기에 세모의 어귀에서 엇갈리는 희비의 표정들을 읽으며 무상의 시간을 되새길 뿐이다.
어제가 별 날이 아니고 오늘이 별날이 아니건만 어제까지를 일러 거년이라 하고 오늘부터를 일러 금년이라 한다. 또 우리의 영혼은 죽어도 살아도 그 영혼이건만 죽으면 저승이라 하고 살았을 때는 이승이라 한다.
우리 육체는 비록 죽었다 살았다 하면서 이 세상에 있기도 하고 저 세상에 있기도 하지만 영혼은 불멸하여 그 생사가 없는 것이니 아는 사람은 인생의 생로병사가 마치 춘하추동의 계절이 바뀌는 것과 같고 저생과 이생이 마치 거년과 금년인 것과 같을 뿐인 것이다.
불교의 무상관에서 비롯된 이 설법을 우리 원불교 소태산 교조께서 어느 해의 신년 설법으로 말씀한 일이 있다. 물론 불가나 형이상학의 세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시간개념이다.
그러나 흔히 범인에게는 고고하고 형극의 길인 것같이 인식되는 「도」에 달하는 긴 여로도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성불이나 성인 되는 길이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내 마음을 쓰기에 달려 있는 것이니 항상 잘못된 마음을 고쳐 나가면 되는 것이다.
새해가 되면 거듭 새 사람이 되고 지난날의 과오를 바로 고쳐 잡기만 한다면 세속의 풍진은 말끔히 씻기고 일원의 새로운 낙원이 건설될 수 있는 것이다.』 새 사람이 되는 길은 항상 새로운 공덕을 세상에 남기고 좋은 습관을 길들이며 본래의 성품을 닦아 충분한 자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공자는 나이 50에야 하늘의 명을 알았다 했으며 이윤은 50에야 49세 때의 비를 비로소 깨달았다고 했다. 위대한 선성들도 이처럼 뒤늦게야 하늘의 명을 알고 자신의 비를 깨달아 인생 50세를 지각 성실의 나이로 거느리며 살다 갔다.
하물며 범인의 못다한 아쉬움과 미련은 그렇게, 성급할 것이 없다. 아직 범인의 때를 다 벗지 못한 나 자신부터가 인과에의 각성은 확실하고 성리의 기초는 떼었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지명·지비란 마음이 큰 진리에 정착하고 생활이 큰 공도에 부합함을 뜻한다. 명을 아는 사람은 인과의 큰 진리와 생사 없는 큰 진리, 성품은 같다는 큰 진리에 완전히 그 마음을 바탕하게 되며 비를 아는 사람은 공부하고 감사하고 봉공하는 생활을 일상화하게 된다.
이제 왁자지껄한 송년 「파티」에 마음이 들뜨기보다는 나이가 든 사람은 든 사람대로 젊은 사람은 젊은 나름으로 세속의 한해를 정돈할 때가 됐다. 지혜에 치우쳐 수덕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던가. 허명에 팔려 실질에 등한하지는 않았는가.
어제와 오늘, 지난해와 오는 해가 무한히 연속되는 시간대를 맴돌아야 하는 인생이지만 보다 경건한 자각의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물질 문명의 홍수 속에 익사해 버릴 것만 같은 정신 문명의 재건을 위해서도 흔히 낡아빠졌다는 헌책 속의 한 구절 교훈을 밀짚으로 붙잡아야겠다. 【이공전 (원불교 정화사 사무장)】
◇필자=50세 전남 영광 출생 ▲이리 원광대 졸업 ▲원불교 총부법감 ▲현 원불교 정화사(경전 편찬) 사무장 총부 감찰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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