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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화(희곡 작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어쩌면 그건 계절병일는지도 모른다. 해마다 이 무렵이 되면 서서히 손톱 끝이 달아오르기 시작해 작품 모집공고가 얼굴을 내밀고부턴 아예 가슴 저 깊숙이 에서 북소리가 울려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머스」를 넘기도록 신문사로부터의 통보가 없을 땐, 철렁 머리끝부터 싸늘하게 식어 내려오는 열병-.
그래서 설빔도 시큰둥…다시금 축축한 골방에 파묻혀 무좀이 심심찮은 발가락 사이나 후비며 다음 기회를 노려 잠복기로 숨어든다.
그래, 그래, 맞어. 어쩜 그건 한낮의 성욕만큼이나 깊고 아늑한 불씨일는지도 모른다.
어떤 숙명처럼 집요하게 도사리는 불씨I.
아마 누구나 한번쯤은 그 불씨의 극성스런 발정에 시달려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가엾게도 문학 지망생이라면…
하지만 「라스트·카드」에 「와일드」가 오르기를 기대하며 「풀·배팅」하듯 투고한다면…. 제기랄, 아마 편작도 고개를 돌리며 차라리 한 잔 밤길에 복권이나 몇 장 사보라고 권유할 것이다.
사실 애를 태워 얄밉기는 하지만 신춘 문예작품 모집 공고만큼 예쁜 얼굴을 그리 쉽게 발견할 수는 없지 않을까 한다.
참신한 신인을 기다린다는 향긋한 입김을 곁들여 돌올하게 내민 입술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 아직 신문이 숨을 쉬고 있구나하는 반가움이 울컥 솟아오르곤 하는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해 예의 계절병은 더욱 신열을 보태가지만.
하기야 당선소감을 쓸 수 있었다해서 쾌유될 성질의 것은 천만 아니다.
오히려 그 순간부터 더욱더 안으로 곪아 뼛속으로까지 스며드는 악성고질이라 해야 옳지 않을까. 당선은 끝이 아니라 보다 큰 투병의 시작이니까.
당선작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일생일대의 유일한 명작이 되어서는 애초에 「이병」을 앓을 자격조차 없는 것이리라.
어쩜 우린 영원한 환자일는지도 모른다. 시대를 대신 앓아주는….
우리 모두 훌륭한 투병기를 남길 수 있었으면…. 시대가 던져주는 아픔을 대신 느끼고 이야기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몸짓으로, 새로운 음성으로.
그건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우리만이 찾아낼 수 있는 투병 방법이 아닐는지.
그래 그래. 그건 우리, 우리 끼리만의 이야기지만 서도 말이다.

<약력>
▲43년 서울 출생
▲67년 연세대 영문과 조업
▲70년 신춘중앙 문예-희곡 『요한을 찾습니다』 당선
▲76년 중앙일본 창간 10주년 기념 문예작품 모집-희곡 『쉬-쉬-쉬-잇』 입선
▲지금 KBS-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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