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11 꽁꽁 숨겨라 … 러시아 '장막 축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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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을 보면 그 팀이 보인다. 브라질 월드컵이 6월 13일 개막한다. 딱 50일 남았다. H조에서 만날 상대 팀 감독을 집중 분석한다. H조 러시아·알제리·벨기에 유력 일간지의 축구 전문기자가 자국 감독의 스타일과 현재 고민거리를 알려 준다. 한국과 1차전을 치르는 러시아의 파비오 카펠로(68) 감독부터 시작한다. 루슬란 리파토비치(35) 스포츠팀장은 종합지 노바야 가제타에서 16년간 축구기자로 활동했다.

러시아 기자는 파비오 카펠로 러시아 축구대표팀 감독을 “역대 러시아 감독 중 가장 비밀스럽고 철두철미한 인물”이라고 정의했다. 카펠로 감독은 러시아축구협회에도 정보 제공을 꺼릴 만큼 보안 유지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

역대 러시아 대표팀 감독 중 가장 비밀스럽고, 철두철미하다. 이탈리아 출신 파비오 카펠로 감독의 특징이다. 얼핏 ‘마피아’를 연상케 한다. 그는 크리스티안 파누치(41) 수석코치를 비롯해 이탈리아인 위주로 코칭스태프를 구성했다. 패밀리는 늘 함께 움직인다. 수시로 코칭스태프 미팅을 열고 정보를 나누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일절 비공개다. 심지어 러시아축구협회에도 대표팀 관련 정보 제공을 꺼릴 정도로 보안에 철저하다. ‘당연히’ 브라질월드컵 개막을 두 달여 앞둔 현재까지도 러시아대표팀의 베스트 멤버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올해 초 몇몇 언론이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며 축구대표팀과 관련한 정기 브리핑을 요청했지만 카펠로 감독이 “꿈도 꾸지 말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원고 청탁을 받은 뒤 인터넷으로 한국 대표팀 상황을 검색하다 깜짝 놀랐다. 브라질 월드컵 예상 포메이션을 비롯해 대표팀에 대한 다양한 영문 기사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러시아 언론은 A대표팀과 관련한 정보를 가급적 기사화하지 않는다. 월드컵 본선에서 성적을 내려면 선수단뿐만 아니라 언론도 감독의 정책에 협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러시아에는 ‘2002 한·일월드컵 트라우마’가 있다. 조 추첨 발표 직후 16강행을 자신했지만 조별리그에서 1승2패로 조기 탈락한 후유증이 컸다. 당시 조별리그 조합(일본·벨기에·튀니지)은 이번 월드컵과 놀랄 만큼 유사하다. 때문에 브라질 월드컵 조 추첨 이후 한동안 ‘2002 월드컵’이 화두가 됐다.

 러시아 축구협회의 목표는 8강이다. 4년 뒤 차기 월드컵 개최국으로서 8강은 해야 체면이 선다는 생각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 카펠로 감독에게 최대한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요즘 카펠로 감독은 유로 2008에서 러시아를 4강으로 이끈 거스 히딩크 전 감독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2012년 부임 이후 축구협회의 계약 연장 제의를 잇따라 거부해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올해 초 2018년까지 계약을 연장한 뒤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카펠로 감독이 언론과 인터뷰에서 “2018 월드컵이 내 지도자 인생의 마지막이다. 이후에는 무조건 은퇴하겠다”며 배수진을 친 게 러시아 팬과 언론의 호응을 얻었다.

 카펠로 감독은 최종 엔트리 구성을 앞두고 주장 겸 미드필더 로만 쉬로코프(33·제니트)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임 주장이던 이고르 데니소프(30·디나모 모스크바)와 캡틴 자리를 놓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여 선수단 분위기가 흐트러졌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들어 쉬로코프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린 알란 자고예프(24·CSKA 모스크바)가 노골적으로 불만을 쏟아내며 팀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카펠로 감독의 설득이 먹혀 들지 않을 경우 팀워크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세대교체 또한 중요한 과제다. 계약 연장을 계기로 카펠로 감독은 러시아 월드컵에 대한 대비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루지야 청소년대표팀을 거친 1992년생 유망주 솔로몬 크베르크벨리야(22·루빈카잔)를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러시아는 자국리그 출신들이 주축을 이루는 대표팀의 ‘경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세계적인 명장을 사령탑에 앉히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카펠로 감독 또한 780만 유로(112억원)의 고액 연봉을 받으며 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세계를 놀라게 하고, 4년 뒤 러시아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는 대회의 주인공이 되는 것. 러시아 축구팬의 기대이자 카펠로의 목표다.

정리=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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