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부패 몸살…뇌물.탈영 군기문란 심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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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 조선인민군 출판사가 펴낸 '학습 제강'은 군 수뇌부와 지휘관들의 정신무장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순결한 양심과 의리로 혁명의 수뇌부를 받들어 나가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란 별도의 주제에서다.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한 외에 돈과 뇌물 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고, 일상생활에서의 엄격한 청렴성을 요구했다. "사치한 것을 반대하고 생활을 소박하게 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거나 "적의 뇌물은 독이 아니면 비수이니 적의 뇌물공작에 절대로 말려들지 않아야 한다" "돈과 물건으로 우리 군대를 녹여내는 책동을 분쇄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내용들엔 북한군 내부의 기강 해이와 부패상이 반영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최근 알려진 북한군의 기강 해이 사례엔 장교나 사병 가릴 것이 없다. 국경 수비대들은 도강(渡江)을 묵인해 주는 대가로 돈을 챙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중국 간 국경 수비대를 중심으로 군인들의 탈영과 귀대 거부 등 군기 문란 사건이 급격히 늘었다는 게 탈북자들의 전언이다. 또 이들 탈영자를 색출하는 대대적인 검열이 임박했다는 소문도 있다.

'학습 제강'은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국경과 해안의 모든 초소는 혁명의 수뇌부를 지키는 관문이며 원수와의 대결이 가장 첨예한 전초전이다. 단 한 순간의 해이가 빈틈을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한 정보 관계자는 "최근 김정일 위원장이 사단급 부대에서 한 연설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가 유출된 사례도 있다"고 소개했다.

북한군 내부엔 복사기가 아직 보급되지 않았다. 경제사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북한군 내 사정이 담긴 문건들의 외부 유출 위험을 줄여보자는 뜻도 있다. 이런 북한군 내에 최근엔 주요 비밀 문건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가 중국 등지에서 비밀리에 반입된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북한 당국은 이런 일들을 총체적인 기강 해이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학습 제강'과 같은 민감한 문건이 공개된 것 자체가 북한군 내의 기강 해이 실상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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