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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며 어떻게 살 것인가?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필자는 요즘 기진 맥진이다. 최근 일어난 8인 의사연대 사건 때문에 처음에는 분노를 하다가 우울증 단계를 넘어 이제는 기진 맥진이다. 요샛말로 멘붕상태다.

생각하기도 싫고 사람 만나는 것도 싫고 밥먹는 것도 싫고 어디 훌쩍 잠적해서 좋아하는 음악이나 듣고 자연이나 벗하며 남은 생애를 보내고 싶기도 하다.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음악 들으며 김수환 추기경님이나 법정스님 말씀 책을 정독해 보기도 한다.

그전에는 몰랐는데 이제와서 이분들의 말씀들을 음미해보니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되기는 하나 근본적으로 멘붕상태에서 건져 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도대체 일상이 재미가 없는 것이다. 체중도 3kg이나 빠졌다. 그래서 세월이 약이 겠지 하고 멍한 상태에서 지내고 있는 것이다.

기분이 이러하니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피로감도 훨씬 더해 진다. 지난 목요일 외래환자들을 보고나니 완전 기진맥진 상태가 되는 기라. 그래도 우짜노 하면서 금요일 수술할 환자들을 보기 위해 전공의와 함께 병실 회진을 올라 간다. 한 병실로 가니 내일 수술 예정인 중년의 여자 환자가 뜬금없이 "교수님, 내일 수술이나 할 수 있겠어요?"한다. "왜요? 내일 수술하다가 죽을 것 같아서 그래요?" 쏘아 주듯이 말하고 병실을 나오는데 이거 원 영 기분이 말이 아니다. 오죽 피곤하고 지쳐 보였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

근데 다음날 출근해서 버릇대로 컴터 메일함을 열어 보니 또 사람 기분 잡치는 멜이 병원 보험심사과로 부터 와 있다. 얼마 전 수술한 환자 중에 갑상선 수질암, 여포암, 유두암이 동시에 발견된 증례가 있어 학회에 보고해야겠다고 준비하는 환자가 있었는데 이 환자의 검사비용 중 RET 유전자 검사비 300,000원이 몽땅 삭감당했다는 내용이다. 삭감당한 이유는 가족력이 없는 수질암환자(sporadic medullary thyroid carcinoma)는 RET 유전자 검사를 인정 안 해 준단다. 이런 무식한 것들 같으니라구.....

수질암은 이 환자와 같은 산발형이 75~80%고 유전형(가족형)이 20~25%다. 유전형은 다시 다발성 내분비종증A형(MEN2A)과 B형(MEN2B)으로 나뉜다. 유전형의 80~90%는 MEN2A형이고 나머지는 MEN2B형이다. 그리고 유전형 중에는 드물게 다발성내분비종증이 없는 non-MEN familial type도 있다. RET체세포 돌연변이가 나타나는 빈도는 산발형이 20~30%, 유전형이 95~100% 된다.

산발형이라고 해서 돌연변이가 안 나타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미국갑상선학회 가이드라인에서도, 일본에서도 산발형이라 해도 RET 돌연변이 검사를 해야한다고 권유하고 있다(World J Surg 2009;33:58~66, Thyroid 2009;19(11):1167~214, Endocrine Practice 2013;4:703~711).

산발형에서 RET돌연변이가 있는 환자는 다발성이 많고 예후가 더 안 좋은 것으로 되어 있다. 반대로 RET변이가 없는 환자는 예후가 좋고...따라서 산발형이라도 유전자 검사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다. 근데 산발형에서 RET검사했다고 모조리 삭감 당했단다. 도대체 비전문가 집단이 이렇게 부당하게 삭감해 놓고 외부에 알릴 때는 과잉청구 했다고 의사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하는 기라..........에라이....

이 뿐인가? 무슨무슨 이유도 안되는 이유를 들어 갑상선수술 때 동시에 시행한 림프절청소술 수술비를 마구마구 삭감해버리고......환자에게 이롭겠다고 사용한 봉합사 비용이 좀 비싼 것이라고 무조건 삭감해버리고......

환자가 비용 지불하겠다해도 불법이라고 안된다하고.......도대체 이 나라는 전문가는 설 땅이 없고 비전문가가 활개를 치는 나라인 기라. 물론 우리 환자들은 의사들이 이렇게 당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 턱이 없다. 같은 의사라도 이제는 동료라 생각하기가 어렵게 된 세상에 뭐 이래저래 의사생활도 재미가 없어져 가는 기라.

이렇게 처진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아~~~세월호가 침몰 했단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 난 것이다. 대부분 승객은 피어 보지도 못한 꽃 같은 우리들의 아이들이란다. 우째 이런 일이..............

배가 침몰할 때는 선장은 물론 승무원들이 끝까지 남아 승객들을 구조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나서 여의치 않으면 배와 함께 최후를 같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타이타닉의 승무원들은 어떻게 했던가? 버큰헤드호(Birkenhead)의 선장과 승무원들은 어떻게 했던가?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먼저 탈출한 선장이란 사람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그렇게 구차하게 생명을 이어가고 싶은 건가?

대한민국호라는 배도 세월호와 다른 점이 무엇이 있는지 묻고 싶다. 아마 이 사건을 가지고 어떻게 하는 것이 차기 권력을 차지하는데 유리할지만 골몰하고 있지 않을까? 국민이라는 승객을 안 중에 두고 있을까? 대한민국호가 침몰한다고 가정한다면 과연 그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오늘의 사태가 우연히 일어난 사고라고만 생각할 수 있을까?

우리라는 공동체보다는 나만 생각하는 풍조의 결과로서 나타난 필연적인 비극이 아닐까?

도대체 우리 공동체의 희망은 있는 것인가?

필자는 평생 일 중독을 자랑으로 여기고 살아 왔다. 그리고 이만큼 성장하게 만들어 준 이 나라 이 산하를 사랑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아 왔다.

평생을 갑상선암 분야에 몸을 담아 왔던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사태는 사람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가져 오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필자의 평생이 부정되는 것 같은 기라. 그래서 요즘은 살맛을 잃어 가고 있다.

"왜 살며 어떻게 살 것인가?"

"세월이 약이 겠지요" 하고 그냥 시간 보내면 다시 살 맛이 되살아 날 수 있을까?

☞박정수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외과학 교실 조 교수로 근무하다 미국 양대 암 전문 병원인 MD 앤드슨 암병원과 뉴욕의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에 대한 연수를 받고 1982년 말에 귀국했다. 국내 최초 갑상선암 전문 외과의사로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초대 갑상선학회 회장으로 선출돼 학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대한두경부종양학회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아시아내분비외과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국내 갑상선암수술을 가장 많이 한 교수로 알려져있다. 현재 퇴직 후에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주당 20여건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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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기자 sohopeacock@naver.com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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