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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미「칼럼니스트」「리처드·홀브루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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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다음은 예선초기「카터」에 끌려「포린·폴리시」라는 외교전문잡지 편집장 직을 사퇴하고 그의 선거를 도운 미국 진보 파 성향의「칼럼니스트」「리처드·홀브루크」씨가「뉴스위크」지에 기고한 글이다. <편집자 주>
내가 보기에 예비선거라는 어려운 시련에 도전한 후보들 가운데「지미·카터」는 처음부터 가장 뛰어났다.
나는 75년에 몇 차례 그와 만나서 좋은 인상을 받았으므로 작년 11월「유럽」의 한 회합에서「카터」가 민주당 대통령지명의 결승진출명단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그가 가장 유력한 후보가 되리라고 확신하게 된 것은 지난1월 그와 저녁시간을 오랫동안 같이 가지고서였다.

<분명한 정책지침 제시>
그 날「워싱턴」에서 10여명의 사람들과 저녁식사를 나누는 자리에서「카터」는 우리들의 지지를 요청했다. 그의 태도는 당당했다. 그는「워싱턴」의 진보 파들로부터 도움을 받든, 못 받든 간에 대통령이 될 것이지만 이「그룹」의 사람들이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견해가 진보 파의 견해와 모든 점에서 꼭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서로 양립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날 밤 질문을 받으면서「카터」는 비범한 기교와 지력을 보여줬다. 그는 이 자리에 나온 「에너지」정책에 관한 전국적 단체 지도자의 도전을 힘 안들이고 물리쳤다. 그는 이 단체가 대통령후보들에게 제출한 질문서는 문제의 복잡성에 비해 회답을 위한 공란이「예스」 아니면「노」라고 답변할 여지밖에 주지 않기 때문에 답변을 거부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자세한 의견을 신문에 광고한 적이 있다고 말하고 이 문제에 대해 단순한 해답을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에너지」단체 대표는 찍소리 못 하고 물러섰다.
나는 감명을 받았다.「카터」는 청중들을 애교로 끌어들이려 하지 않았으며 문제의 핵심을 피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의 답변은 길고, 생각은 깊었다. 정책의 방향을 명쾌하게 개진하지는 못했지만「카터」의 가치관과「스타일」에 따라 분명한 지침을 제시했다.
「카터」는 많은 다른 정치인처럼 손쉬운 미사여구를 늘어놓지도 않았고 그의 냉정한 자신감과 성실성은 그의 비범한 결단력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청중들은 그를 신중하게 대하게 되었고「카터」는 능숙하게 청중을 다루었다.
북부의 진보 파「그룹」에서는「카터」의 남부말투와 그의 배경을 불유쾌하게 생각하고 있고 또 초기에 그가 월남전을 지지한 것을 의혹의 눈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 자리에서 월남전에 관한 몇 가지 기본적인 교훈을 잘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나는 또 그가 외교정책이 인간의 문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거듭 관심을 표명하면서 동시에 미국의 주도적 역할과 미국의 국력이 유지되는 방향으로 대외정책이 수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을 듣고 감명을 받았다.
대외정책에 관한 「카터」의 과거발언을 모두 읽고 그와 직접 대화를 나눈 결과「카터」의 일반적인 견해가 온건한 진보적 경향을 띠고 있다고 느꼈다.

<파벌세력 집결에 수완>
그러나 내가「지미·카터」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 건 그의 외교정책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외교정책은 만족할 만한 것이었지만 대부분의 민주당 대통령후보자들도 같은 정책을 갖고 있었다.
정말 나를 끌리게 한 건 분명히 대립되는 정견들을 하나로 묶는「카터」의 아주 특이한 자질 때문이라고 하겠다.
민주당은 64년 이후부터 12년 간 적대적 파벌간의 분파현상을 심화시켜 왔다. 「카터」는 전부라고는 할 수 없어도 국민의 양극화현상을 융화시키는데는 충분할 만큼 각 파벌세력의 상당한 부분을 그 자신에게로 집결시켰다.
단적이고 가장 놀라운 예로는「카터」가 대부분의 흑인유권자들을 사로잡는 동시에「조지·월리스」「앨러배머」주지사의 핵심 지지 기반으로 도저히 깨뜨릴 수 없었던 인종차별주의자들 까지도 자기편에 끌어들였다는 사실이다.
이 두 집단은 몇 가지 기본문제에서 상반되는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흑인과「월리스」지지자들을 한 지붕 안에 끌어들였다는 것은 정치적 마술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정치영도력의 요체이기도 하다. 타 일방을 희생하지 않고는 한 집단이 바라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없을 바에야 서로가 요구하는 것을 축소시켜서 양자가 다같이 받아들이도록 유도하는 정치영도력이 필요한 것이다.
「카터」가 진보적 인사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진보 파가 그를 배척하는 이유는「스타일」 상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무한한 가능성을 약속>
그는 역시 보수주의자도 아니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쟁점에 대한 그의 입장을 상세히 분석해 보면 지극히 완고한 진보 파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받아들일 만한 것이다.
월남전의 실패와「워터게이트」사건이후 미국은 최근 수년간의 정치적 악취에 오염되지 않은 새로운 인물을 대망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쳐 왔다.
강인하고, 아주 신선하고, 결연한 그는 바로 그런 인물이다.
궁극적으로 영도력의 요인이 정확히 무엇인가는 결코 알 수 없다. 또 특정인물이 어떤 유형의 대통령이 될 것 인가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여타후보들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고 한계가 분명한 인물들인데 비해「카터」는 내가 도저히 유혹을 물리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한 가능성을 약속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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