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현의 마음과 세상] 게임중독 비극의 이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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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호 22면

최근 22세 청년이 생후 28개월 된 아들을 수 주간 집에 방치했다가 게임을 하러 나가려는데 잠을 자지 않는다고 살해한 혐의로 구속됐다. “얼마나 게임중독이 심했으면 저런 일을 저질렀을까” 하고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여기서 한 번 ‘게임’이란 단어를 빼고 사건을 재구성해 보자.

공부에 별 취미가 없는 고등학생이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여학생과 연애를 했다. 그러다 덜컥 아이가 생겼고 두 사람은 살림을 차렸다. 둘의 부모가 집은 얻어줬지만 어린 나이에 부모 노릇을 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도 못했을 테니 말이다. 변변한 학력이나 능력도 없는 상태에서 경제적으로 한 가정을 꾸려가는 일도 버거웠을 것이다. 아직 어린 부부는 자주 다퉜을 것이고, 지친 아이 엄마는 결혼 포기를 선언하고 집을 나가 공장에 취업을 해버렸다. 아기와 아빠만 덜렁 남겨져 버렸다. 이때부터 아빠는 아기를 방치한 채 PC방을 전전했다. 아기가 우니 짜증이 났다.

이 얘기에서 궁금증은 아기 조부모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린 나이에 살림을 차렸다면 더욱더 집안 어른들의 도움이 절실했을 텐데 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청년은 부모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부모가 나서서 아기를 돌봐주게 되지 않았을까?

일러스트 강일구

필자는 이번 사건을 우리 사회의 가족공동체 해체와 본능적인 돌봄 행동조차 귀찮아할 정도로 자기중심적인 인격이 낳은 비극으로 여긴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앞가림뿐 아니라 부모가 돼 자식을 부양하는 책임을 지며 사회적 요구에 대한 의무를 다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내버려 둬요.” 많은 10대들이 말한다. 과거와 달리 부모들도 자기 앞가림하기 힘드니, 그런 자녀들을 스스로 알아서 하라고 방치한다. 이혼과 가족해체 등으로 그나마 챙겨줄 부모가 부재(不在)한 경우도 많다. 10대는 점점 더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고 최소한의 의무도 귀찮아하는 사람으로 자라난다. 가정이나 공동체 안에서 자연스럽게 익혔어야 할 최소한의 도덕률, 인간적 책임감, 양육의 의무와 같은 것들이 내재화되지 못한 채 나이만 성인이 돼 버린 것이다. 내 아기가 배고파 울고 아파하면 도둑질을 해서라도 먹이고 입히는 것은 인간이기 이전에 동물적 본능의 하나다. 이것은 가르칠 이유가 없는 일이라 여겨왔다. 그런데 이 젊은이는 그런 기초적인 것을 배우지 못한 채 아빠가 돼 버렸다. 모른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고 모든 것이 귀찮고 짜증이 날 뿐이었다. 해결책을 찾기보다 게임에 머물며 지금 처한 현실에서 도피하려 했다. 자기애에 몰입해 세상과의 교신을 끊어버린 것이다. 게임중독은 빙산의 튀어나온 특이한 한 현상일 뿐이다.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으로 자라나 최소한의 인간적 의무를 지키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이만 성인이 된 경우가 늘고 있다. 최근 아동학대, 묻지마 폭력 사건의 증가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여지가 많다. 학교 수업시간에 “아기가 우는 것은 배가 고픈 것이고 아파하면 내 마음은 더 아파야 한다”고 가르쳐야 하는 세상이 될까 두렵다. 성인이 되는 법을 교육하는 학교나 학원은 없다. 가족공동체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기고 다시 자리를 잡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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