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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3억5천만 년 전 지구, 미생물 없었던 덕에 ‘석탄공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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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호 25면

석송류의 한 종류인 아스테록실론. 줄기에 작은 잎이 많이 달려 있다. 최초의 육상 식물 후보 중 하나다.

영국의 리버풀과 맨체스터, 독일의 겔젠키르헨과 도르트문트엔 공통점이 여럿 있다. 잘 알다시피 축구 명문팀의 본거지다. 또 산업혁명의 발상지이자 유럽 최대의 공업지대다. 탄전(炭田)으로도 유명하다. 예로 분데스리가 소속 축구팀 ‘샬케04’의 본거지인 겔젠키르헨과 도르트문트가 위치한 루르 탄전엔 두께 1~3m의 얇은 석탄층 100여 장이 두께 4000m의 지층에 암석층과 교대로 놓여 있다. 이 석탄층이 없었다면 산업혁명도 없었고 박지성이 맨체스터에 갈 일도 없었다.

<8> 석탄의 탄생

이 석탄층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타임머신을 타고 오르도비스기(期) 말(末)에 해당하는 4억 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생명의 역사는 크게 고생대→중생대→신생대로 나뉘며 고생대는 다시 캄브리아기→오르도비스기→실루리아기→데본기→석탄기로 이어진다.

타임머신을 타고 낯선 곳에 도착했다면 물속이 제일 안전하다. 산에 도착한 우리의 타임머신은 작은 폭포로 연결돼 있는 개울을 지나 호수까지 도착했다. 물속은 온갖 원시적인 동물과 식물들이 가득한 생기 넘치는 곳이다. 물엔 녹조류가 가득해 푸른색이다. 타임머신은 호수 위로 올라왔지만 우리는 타임머신에서 내리기가 두렵다. 물위의 세계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꽃이나 숲은커녕 푸른색이라고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지구의 육상은 마치 화성처럼 황량하다. 연못은 있지만 연못 위엔 수초(水草)도 보이지 않는다. 물 밖의 세계엔 어떤 동물도 없다. 하긴 식물이 없으니 동물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녹조류, 생명 틈새 노려 점점 육지로
태고의 식물인 녹조류에게 바다는 천국이었다. 물 걱정, 햇빛 걱정이 없었다. 녹조류는 스스로 광합성을 해 영양분을 생산하니 먹이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녹조류는 자신을 먹는 포식자 걱정도 별로 하지 않았다. ‘먹이사슬’의 포식자는 자신의 먹이의 씨를 말리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포식자는 먹잇감의 5~20%만을 먹을 뿐이다. 먹잇감은 이를테면 ‘십일조’만 바치면 생태계 안에서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할 수 있다. ‘먹이사슬’은 대개 이런 식으로 유지된다.

생명은 틈새를 노린다. 자신보다 작은 생명들이 사라지면 몸을 줄여서 그 자리를 차지한다. 자신보다 큰 생명들이 사라지면 몸을 늘려서 그 자리를 점유한다. 또 생명이 비어 있는 자리로도 진출한다. 이런 틈새를 생물학자들은 ‘생태적 지위’ 또는 ‘니치(niche)’라고 한다. 생명이 새로운 틈새를 차지하려는 데는 분명한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녹조류가 육상의 습지로 진출했다고 하자. 거기엔 다른 녹조류들이 없다. 무기영양 성분이나 서식처를 두고 다툴 경쟁자가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육지는 바다보다 환경 변화가 다양하고 심하다. 이런 틈새를 장악한다는 것은 앞으로 다양성 증가를 무궁무진하게 담보하는 것이다.

그런데 빈틈은 아무나 공짜로 차지할 수가 없다. 우연히 파도에 몸을 실었다가 육지에 올라온 녹조류는 금방 말라죽고 말았다. 변화 없이 새로운 곳에 진출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틈새를 차지하려면 먼저 자신이 변해야 한다.

생명의 변화란 ‘마음가짐’이나 ‘생활습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의 변화란 곧 유전자의 변화다. 유전자는 아데닌(A)·티민(T)·구아닌(G)·시토신(C)이란 네 가지 염기 알파벳의 서열로 이뤄진 단백질 설계도다. 이때 알파벳 하나가 바뀌면 단백질을 이루는 아미노산 하나가 바뀐다. 이를 돌연변이라고 한다. 거의 모든 돌연변이는 생물에게 해롭다. 원래 있어야 할 단백질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틈새를 쟁취하려면 모험이 필요한 법이다. 용하게도 돌연변이가 틈새를 차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한두 가지 돌연변이만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다행히 지금부터 10억 년 전 ‘유성(有性)생식’이 탄생했다. 생물은 유성생식을 통해 다른 필요한 성질을 갖출 수 있었다. 이제 녹조류는 육지로 진출할 준비가 되었다.

쇠뜨기말은 최초 육상식물 유력
최초의 육상생물은 누구일까? 우선 선태류, 즉 이끼를 생각할 수 있다. 이끼는 뿌리가 없다. 뿌리가 없으니 땅 속의 물을 잎까지 나를 방법이 없다. 따라서 이끼가 차지할 수 있는 틈새란 몸을 축축이 적실 수 있는 물가에 불과했다. 따라서 이끼는 진정한 최초의 육상생물은 아니다. 이끼는 지금도 여전히 마른 땅엔 진출하지 못했다.

녹조류 가운데는 수레바퀴처럼 생긴 차축조류가 있는데 쇠뜨기말이 대표적이다. 현재 육상에서 살고 있는 쇠뜨기와 비슷하게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 생물학자들이 쇠뜨기말을 최초 육상식물의 후보에 올린 까닭이 있다. 쇠뜨기말의 수정란은 건조한 환경에선 휴면(休眠) 상태에 있다가 조건이 좋아지면 식물체로 발아(發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자생물학이 진화학에 도입되면서 같은 차축조류인 콜레오키티가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콜레오키티는 매트 모양을 하고 있는 엽상체(葉狀體)다. 엽상체란 김이나 미역처럼 뿌리·줄기·잎의 구별 없이 식물 전체가 잎 모양인 식물을 말한다. 콜레오키티 수정란은 분열할 때 어미의 몸체와 관으로 연결돼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다. 나무의 겉껍질 성분인 리그닌으로 덮여 있어 건조한 기후에도 잘 적응한다.

석송류의 한 종류인 시길라리아. 줄기에 가지가 거의 없고 줄기 끝에 수관이 형성돼 있다.

최초의 육상 진출자가 선태류인지 쇠뜨기말인지 콜레오키티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최초의 육상식물이 4억4000만 년 전인 실루리아기에 육상으로 올라왔다는 것은 밝혀졌다. 4억 년 전 데본기엔 오늘날의 솔잎란과 비슷하게 생긴 식물이 생겼다. 현재의 착생란엔 두껍고 공중에 노출된 공기뿌리가 있다. 공기뿌리는 공기 중의 수분을 흡수한다. 솔잎란도 이끼처럼 땅에서 물을 빨아들이지 못했다. 광합성을 하는 데는 빛과 함께 물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솔잎란은 얕은 물가에 옹기종기 모여서 살았다. 아직 마른 육상엔 아무것도 없었다. 육상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선 새로운 무기가 필요했다.

육상을 점령하기 위해선 내부 투쟁에서 이겨야 했다. 솔잎란은 더 빨리 자라고 더 많이 번식하기 위해 더 강한 광합성 능력이 필요했다. 솔잎란의 잎을 헛잎 또는 가엽(假葉)이라고 한다. 잎이라기보다는 줄기에 가시처럼 돋아난 돌기에 가깝게 생겼다. 이때 탄생한 것이 햇빛 받는 면적이 넓은 작은 잎 또는 소엽(小葉)이다. 햇빛만 많이 받는다고 하여 광합성이 마구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햇빛 공급량에 맞춰 물 공급량도 늘려야 한다. 물을 뿌리에서 잎까지 전달할 수 있도록 관다발이 확장됐다. 소엽과 관다발을 갖춘 최초의 식물은 석송류다.

석탄기 호숫가의 모습. 키 큰 식물은 칼라미테스다. 아래쪽에 둥글게 말려 있는 식물은 아스테록실론이다.

석탄기 나무, 가지와 줄기 굵기 같아
데본기의 석송류는 키가 20~40m, 지름은 2m까지 자랐다. 생긴 모습은 오늘날의 야자나무와 비슷하다. 가지를 거의 치지 않고 곧게 자라다가 줄기 끝 부분에 수관(樹冠)을 형성한다. 이런 구조는 번식에 유리했다. 포자낭이 나무 꼭대기 수관에 열리기 때문에 바람을 타고 널리 퍼졌다. 덕분에 석송류는 영역 확장이 쉬웠다. 게다가 석송류는 정자와 난자가 서로 다른 배우자체(體)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근친교배가 잘 일어나지 않고 강한 자손이 태어난다. 데본기 석송류 가운데 아스테록실론과 시길라리아가 대표적이다. 이 아름다운 식물이 지금도 살아 있다면 아열대 지역의 가로수로 인기가 높았을 것이다. 진정한 최초의 육상 지배자인 석송류는 현재도 10종이 남아 있다.

석탄기 식물인 칼라미테스의 잎 화석. 칼라미테스는 헛잎보다 발전한 작은 잎을 가지고 있었다. 광합성은 주로 줄기에서 일어났다.

육상에 올라온 솔잎란엔 또 다른 약점이 있었다. 솔잎란은 줄기와 가지의 굵기가 같기 때문에 줄기가 식물 전체를 지탱하기 힘들었다. 큰 수관을 지탱하기엔 둥치가 가늘었다. 식물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줄기보다는 가는 가지가 필요했다. 여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3억9000만 년 전 석탄기에 들어서야 가는 가지가 생겼다. 그 주인공은 솔잎란에서 직접 진화한 쇠뜨기의 한 종류인 칼라미테스다. 드디어 지구에 안정적인 나무가 생긴 것이다. 솔잎란류·석송류·쇠뜨기류까지 진화를 거듭했지만 모두 광합성은 주로 줄기에서 일어났다. 이들이 만든 헛잎이나 작은 잎은 광합성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석탄기에 등장한 고사리의 잎은 넓었다. 이를 큰 잎 또는 대엽(大葉)이라 한다. 큰 잎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예전엔 ‘헛잎→작은 잎→큰 잎’으로 진화했다는 이론이 우세했지만 요즘은 마치 오리발에 물갈퀴가 생긴 것처럼 가지 끝이 융합해서 큰 잎이 생겼다는 이론이 더 유력하다.

석탄기 말 대기 중 산소 농도는 약 28%나 됐다. 현재의 21%보다 훨씬 높았다. 모든 동물이 커질 수 있는 조건이었다. 잠자리 메가네우라가 날개를 펴면 그 길이가 70㎝에 달할 정도였다. 이산화탄소 농도 역시 산업혁명 직전보다 세 배나 높았다. 덕분에 석탄기의 숲은 울창했다. 아직 대형 초식동물이 진화하기 전이라 마땅한 천적도 없었다. 산꼭대기에서 계곡까지 아름드리 나무가 가득했다. 그러나 그들의 뿌리는 아직 약했다. 산꼭대기의 나무가 쓰러지면 그 아래 있는 나무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져 계곡에 가득했다. 뿌리 뽑혀 죽은 나무는 썩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 나무를 썩힐 미생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나무들이 열과 압력을 받아 생성된 것이 바로 석탄이다.

영국과 독일의 축구 명문팀을 탄생시킨 근원을 좇아가면 석탄기의 석송류와 고사리류가 있다.

봄이다. 고사리나물을 먹을 때 또는 박지성의 경기를 보면서 3억5000만 년 전 석탄기의 그 울창한 숲을 기억할 수 있을까? 더 중요한 것은 석탄은 이제 더 이상 생길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정모 연세대 생화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본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나 박사는 아니다. 안양대 교양학부 교수 역임. 『달력과 권력』 『바이블 사이언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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