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왕레이, 장렬한 최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7면

제7회 세계바둑오픈 결승전 제2국
[제11보 (214~231)]
白·중국 王 磊 8단 | 黑·한국 曺薰鉉 9단

214로 푹 찌른 수는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만든다. 우박처럼 쏟아지는 포탄 속으로 돌진하는 한명의 용감한 병사. 그는 물론 몇발 못가서 산산히 부서진다. 장렬한 최후다.

曺9단은 215를 선수한 뒤 217로 집어넣어 패를 만들었다.이 패를 져도 흑은 손해랄 게 별로 없다. 그러나 백의 왕레이8단 쪽은 좌하의 대마가 송두리째 잡힌다. 중앙대마도 A에 한수 더 두면 잡힌다.

흑▲ 두점이 살아가면서 좌하 대마가 잡히면 그 안팎의 차이는 70집. 중앙이 재차 잡히는 것은 30여집. 도합 1백집이 넘는 천지대패다. 웬만한 패는 흑이 받아줄 리 없다.

결론적으로 백은 자체 팻감 외에 다른 곳엔 팻감을 쓸 수 없다. 그러나 자체 팻감도 222와 228 두곳을 쓰자 바닥이 나고 말았다.

曺9단이 231에 패를 쓰자 왕레이8단은 고개를 깊숙이 숙인채 항복을 시인했다. 6개월에 걸친 삼성화재배의 대장정이 끝나고 우승자가 가려지는 순간이었다. 간단한 복기를 마친 두 기사는 시상식장으로 발을 옮겼다.

중국 팬들 속에서 간간이 박수가 터져나왔다. 曺9단은 힘이 넘쳐보였다. 온종일 격전을 치른 사람답지 않게 씩씩하게 걸었고 기자들의 질문에도 여유있게 대답했다.

반면 26세의 왕레이는 패배의 상처로 인해 지치고 힘든 모습이었다. 曺9단은 지난해에 이어 또 한번 중국의 염원을 꺾어놓았다.

중국 팬들은 서글퍼하면서도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50세의 曺9단을 경탄스러운 듯 바라보았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