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국봉은 스탈린 수법을 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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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뉴요크 UPI동양】중공당의 새 주석 화국봉은 과거 소련독재자 「요시프·스탈린」이 17년 걸려 이룩한 작업을 불과 33일만에 해치웠다. 당과 군·청부·비밀경찰을 통할하는 전체대권을 한 손에 휘어잡은 것이다.
공안상으로 중공공안군(경찰)최고위직을 역임한 화는 당내 권력투쟁과정의 냉혹한 법칙인 「적자생존」을 통해 마침내 세계 최대인구국의 최고통치자로 군림했다.
공산 당내의 권력투쟁과정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자면 우선 당을 휘어잡아야 하고 이어 정부와 군부·비밀경찰을 손에 넣은 다음 「당의 결속」을 내세워 반대파를 가차없이 분쇄해야한다.
화국봉과 「스탈린」은 그들 자신이 당의 창건자가 아니라 창건자들로부터 당을 인계 또는 접수한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우선 유사한 출발점을 갖는다. 화는 모택동에 이어, 「스탈린」은 「레닌」에 이어 당권을 쥔 승계자들이다.
그러나 화와 「스탈린」이 당 최고위로 부상한 과정은 전혀 다르다. 「스탈린」이 1924년 소련공산당서기장으로 「레닌」을 계승했을 때 그는 「레닌」이 누리던 인민회의의장직까지 삼킬 수는 없었다. 그가 그 의장직에 올라앉은 것은 4년 후인 l928년 산업화5개년 계획에 착수한 뒤였고 적군의 최고사령관이 된 것은 그가 권력을 쥔지 17년 후인 2차 대전에 와서였다.
화는 그러나 9월9일 모택동이 죽은 후 불과30여일 만에 중공최고권좌를 장악, 당주석·국무원총리·당 군사위주석 등 3개 요직을 일거에 움켜쥐었다. 「스탈린」은 실제적이든 가상적이든 파당의 지도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계속 숙청을 단행해야했다. 철권의 「스탈린」은 결국 「레닌」치하의 정치국원 대부분을 소탕해버렸다.
그러나 그는「레닌」의 처 「크루프스카야」는 체포하지 않았다. 화와 「스탈린」은 모두 후계 물망자들을 제치고 전면에 부상했다.
「레닌」은 유언에서 「러시아」의 혁명아 「레온·트로츠키」를 후계자로 지목했으며 중공의 주은래는 온건노선의 등소평을 모의 후계로 떠올렸다.
「스탈린」은 「트로츠키」를 포함한 그의 최초의 정적들을 급속한 공업화·농업집단화·「러시아」의 급속한 공산화를 찬성하는 좌익반대분자들로 낙인찍었다.
「홍콩」의 중공문제전문가들은 화가 등소평이 주장했던 바 모의 영구혁명 및 계급투쟁이론과 주의개발 및 근대화계획을 혼합하는 정책을 취할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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