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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기억력이 나빠진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기억은 보고 듣는 새로운 경험을 대뇌에 등록하고 그것을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재생시키는, 즉 등록-저장-재생의 3단계 과정을 통해 되는데 이 중 어디라도 고장이 나면 기억이 되지 않는다.
기억력은 6∼7세부터 30세까지가 가장 왕성하며 그 이후는 서서히 감퇴되는 게 생리적인 현상이다. 특히 언어중추는 이른 연령에서부터 발달하는 대신 일찍 쇠퇴하므로 사물의 명칭을 기억하는데는 30세가 넘으면 차차 어렵게 된다. 외국어 같은 경우 30세 전에 배워야 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생리적 현상 외에 생활에 가벼운 곤란을 느낄 정도의 기억력 감퇴는 크게 두 가지 원인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대뇌기질의 병 변 때문에 오는 경우가 그 첫째다.
가장 흔히 경험할 수 있는 경우는 역시 만성「알콜」중독이다. 술에 취한 경우는 물론이고 술 마신 후 수면은 얕고 또 새벽 일찍 깨게 되므로 이튿날 숙취까지 겹쳐 정신 노동이 잘 되지 않는다.
또 오래 마시면 신경세포의 조로 현상이 오고 특수「비타민」결핍증으로 예민한 중추신경에 손상을 가져온다.
그 다음 원인은 고혈압이다. 이 경우는 대개 두통이나 불면증이 동반되기도 하지만 이유 없이 기억이 나빠지면 혈압을 재 보는 게 좋다.
요즈음은 주부들의 만성 연탄 중독증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연탄 중독은 반드시 의식을 잃고 넘어지는 경우만은 아니고 만성으로 조금씩 희미하는 경우 자기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중독 되므로 주의를 요한다. 또 공해에서 특히 자동차 배기 중 아황산「가스」등도 강력한 중추신경 파괴 작용이 있다.
둘째 정신적 원인을 들 수 있는데 이 경우는 첫 단계인 등록이 처음부터 안 되는 수가 많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때 기억이 안 된다. 만성적으로「돈」생각만 하는 사람은 자기가 그 생각에 빠져 있다는 걸 자각도 못 하면서 다른 기억이 통 안 된다고 불평이다. 반대로 허탈한 상대나 권태로울 때도 마찬가지다. 작업 환경이 산만하여 지나친 자극이 중추신경에 들어올 때도 정리가 되지 않으므로 기억이 안 된다.
또 자기도 미처 의식 못하는 초조나 불안이 밑바닥에 깔려 있을 때도 주의 집중이 안되므로 기억이 처음부터 되지 않는다. 전형적인「노이로제」증상이므로 전문의의 진찰이 필요하다.
이시형<고려병원 정신신경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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