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은 늘어났어도 떨어지는 작품질|가을국전 현장총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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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0월과 함께 가을미술「시즌」은 중반 접어든다. 2일부터 국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일반 공개됐다. 국전현장에서 미술평론가 임영방 교수(서울대)와 오광수 교수(동덕여대)의 대담을 통해 국전을 총평해본다.

<입상만을 노린 출품>
오=기구가 확대되고 상이 늘어난데 비해 국전작품의 질은 매년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심사위원들의『많은 향상이 이뤄졌다』는 말은 상투적인 자기 합리화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군요.
임=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보다 상을 받기 위해 출품을 하니 그럴 수밖에 없지요.
게다가 심사위원은 10여년 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으니 그들의 낡은 안목에 매달려 젊은이들의 활동이 퇴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10여년 전 박노수·안상철·박협현씨들의 대통령상 수상작과 최근 몇 년의 수상작을 비교하면 얼마나 질이 떨어졌는가가 확실해집니다.
임=국전의 관료적 권위가 커진다는 것은 창작을 하는 화가와 미술교육에 다같이 피해를 줍니다.
각자의 개성을 개화시키는 것이 생명인 예술에서 남의 눈에 들 그림을 그려야 하니까요. 이번 국전에서도 착상이나 재료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보기가 아주 힘들어요.
오=「구상」이라는 범위에 대한 해석도 문젭니다. 표현방법에 있어서 꼭 사실적인 것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향에 문호를 개방해야 합니다.
임=낙선작들을 보지 못해 확실한 말이야 할 수 없지만 떨어진 작품가운데 새로운 시도들이 섞여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오=한편 구체적인 사물을「모델」로 한 바에는 좀더 성실한「리얼리티」가 필요합니다. 여름에 피는 연꽃 밑에 겨울새인 원앙이 놀고있는 동양화 대통령상 수상작품이나「매니킨」의「포트」를 연상시키는 서양화 국무총리상 수상작품들은 보는 이를 어색하게 하더군요.
임=입선작 중에서 눈은 땅 위에 얽힌「타이어」자국을 그린『시간과 공간에서』(이상원 작)같은 작품은 창작 면에서 매우 새로운 느낌을 주어서 눈에 띄었읍니다.
동·서양화에 비해 조각은 오히려 재료를 다루는 기술이나 구성 등이 많이 나아진 것 같지 않습니까. 전 같으면 석고가 대부분이었는데 이제 석조나 목조가운데도 세련된 작품이 많았읍니다.

<국전운영 재고할 때>
오=여하튼 관에서 미술진흥을 위해 25년간이나 직접 개입해 왔다는건 국전에 너무 무거운 권위를 주게 된 것 같아요. 1년에 단 한번 국전에만 출품하고 어엿하게 화가의 명목을 이어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국전에 출품하지 않는 사람도 화가냐』는 어이없는 말을 태연히 하는 노작가도 있어요.
임=요즘은 중·고교 미술교사가 되는데도 국전의 특선경력이 필요하다고 들었읍니다.
오=국전을 해체해서 이런 쓸데없는 것이 정상적이고 참된 예술을 활발하게 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지난 74년 국전을 4부로 나눈 것은 각 부문을 독립시키기 위한 사전작업이 아니었읍니까. 그런데 그후에 독립이나 발전적인 해체를 위한 노력은 진행되지 않고 권위만 굳어져 가는 느낌입니다. 이제 세부적인 개선보다도 근본적인 재고가 필요하지 않을는지….
임=이번 국전엔 눈에 띄게「새마을」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더군요. 「새마을」을 작품주재로 택한 건 좋은데 경운기라든가, 초록색 모자라든가 너무나 도식적이어서 어떤 소재에 대한 상상력이 그 정도인가화가나 심사위원들의 안목이 의심됩니다.
대담 임영방<서울대 교수> 오광수<동학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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