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이슈] 우리사주…장밋빛 꿈 산산조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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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국내 경기가 가라앉고 이라크 전쟁이 터지면서 속앓이를 하는 직장인들이 있다. 최근 몇년 새 요즘 시세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우리 사주를 산 샐러리맨들이다.

정보기술(IT)업체 D사 차장으로 근무하다 지난해 초 퇴직한 S씨.그는 우리사주 이야기가 나오면 속이 쓰리다. 1999년에 주당 2만원에 3천주를 샀다가 2년여 만에 주당 4천원을 받고 처분했기 때문이다. 손해본 액수는 4천8백만원. 한 해 봉급을 날려 버린 셈이다.

당시 직원들은 회사 주식이 코스닥에 등록되면 바로 대박을 터뜨릴 것이라는 장밋빛 기대에 부풀어 너나 없이 경쟁적으로 우리사주를 사들였다.

주식을 받는 것 자체를 확실한 투자로 여겼다. 직급에 따라 물량을 다르게 배정하자 일부 직원들은 주식수가 적다며 불평하기도 했다. 회사는 매입 자금의 절반을 무이자로 빌려주고 나머지는 돈을 빌릴 금융기관을 연결해줬다.

그러나 대박 꿈은 오래 가지 못했다. 주가는 예상을 빗나갔다. 기대만큼 치솟지 못하고 줄곧 미끄러졌다. 3월 들어 주가는 1천3백원선을 들락거리고 있다.

S씨는 "퇴직하면서 주식을 팔아 그나마 손실을 줄였다"고 자위하고 있다. 직장에 남아 있는 동료들 가운데 일부는 회사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해 퇴직은 엄두도 못낸다.

직원들의 이 같은 딱한 사정 때문에 운영자금이 모자라는 회사 역시 사원들에게 빌려준 돈을 회수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상여금 성격으로 회사가 직원들에게 나눠준 우리사주가 애물단지로 변한 것이다.

일부 회사 직원들은 우리사주를 받은 후 주식이 올라 한몫 챙기기도 했다. 그러나 ▶IT업체▶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실적이 신통치 않은 기업의 직원들은 우리사주에 발목이 잡혀 몇년째 이직은 꿈도 못꾸고 있다.

몇년 전 코스닥에 등록한 T사의 L(34)과장은 지난해 결혼 직전 예비 신부와 한바탕 말다툼을 했다. 우리사주를 살 때 빌린 돈 2천4백만원을 갚지 않은 사실을 뒤늦게 실토했기 때문이다. 한 주에 1만2천원이던 주가는 3천원선으로 떨어졌다.

회사가 직원들의 사기를 올려주기 위해 시장 가격에 주식을 거둬들여 배분한 것이 직원들의 주머니를 채워주기는커녕 1년반 만에 거덜을 낸 것이다. L과장은 "주가에 볕들 날만 기다리고 있다"며 "매달 이자를 내는 것도 상당한 부담"이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지난해 4월 우리사주를 산 K씨 역시 가격이 3분의 1로 떨어졌으나 주식을 팔지 못하고 있다. 회사에서 돈을 빌려 산 데다 매입한 지 1년이 지나지 않아 팔 수도 없다.

그는 다음달 대출금을 갚은 뒤 주식매도 기한이 되면 곧 바로 주식을 팔아치울 생각이다. 그는 "빌린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직원들에게 주식은 족쇄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한국가스공사 직원 중 상당수는 경기도 분당 본사 1층에 있는 외환은행 지점에 '대출 금지대상자'로 분류돼 있다. 99년 우리사주를 살 때 필요한 돈을 주식을 담보로 연리 9%로 대출받았으나 주가 폭락으로 직원들이 제때 갚지 못했기 때문이다.

SK㈜ C과장은 최근 SK글로벌 분식 회계 사건 이후 SK㈜의 주가가 떨어져 마음 고생이 심하다. 2000년에 매입한 우리사주(1천주)의 가격이 매입 당시 가격인 1만7천5백원을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주가가 한 때 3만원을 호가하기도 했으나 상승에 대한 기대감으로 팔지 않고 놔둔 것이 화근이었다.

분식 회계 사건 이전까지만 해도 1만5천원대를 형성해 그럭저럭 매입가격에 근접했었다. 최근 SK사태가 진정국면에 접어 들어 주가가 기력을 회복해 상승 커브를 그리고 있지만 매입가격에는 아직도 턱없이 모자란다.

김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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