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의 다국적화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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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76년도 판「한국의 산업」에서 제시하고 있는 산업은행의 권고와 지적은 국내 산업계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적절히 포괄하고 있는 듯 하다.
장기개발금융의 전담은행으로서 산업은행이 갖는 중요성으로 보아 그 정책제언은 신중히 귀담아 들어야 할 무게를 가진 것이라 하겠다.
산은이 이 책자에서 특히 강조한 점은 국내기업의 국제화를 촉구한 점이라 하겠다. 국내 단위기업의 대형화나 국제화가 시급하다는 인식은 우리의 공업화 단계에 비추어 세계경제와의 연관도가 그만큼 높아진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이 보고서가 적절히 지적하고 있듯이, 국내 산업활동을 어떻게 세계경제와 조화시키고 그 기능을 확대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뜻을 갖는다.
국제적인 거래유형이 질과 양에서 크게 달라지고 있는데도 우리의 기업들이 단순하고 전통적인 기업활동에만 만족하다가는 언젠가 낙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제거래의 다양화·복합화 추세는 이제 고도의 거래기능과 방대한 정보·자본력의 뒷받침 없이는 기업활동을 불가능하게까지 만들고있다.
이런 거래환경의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기업체제의 정비는 물론, 그 대담한 대형화와 다국적화가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이는 동시에 끊임없이 자본의 집중과 고도화를 추구해 가는 자본제 생산의 속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공업화의 일반적인 추세와는 달리 지금의 시점에서 국내산업구조가 이 같은 대형화·다국적화를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는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국내기업의 다국적화는 최소한 화폐자본의 지원을 전제로 한다. 자본의 국제화는 필연적으로 자본비용의 문제를 야기 시키며 이것을 해결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은행자본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산업자본의 고도화는 필경 자기집중과정을 거쳐 은행자본과의 결합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현존하는 다국적기업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처럼 기업의 다국적화는 금융의 국제화와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보면 국내기업의 다국적화는 상당한 무리가 뒤따를 것이다. 국내은행자본은 아직도 영세한 규모인데다 외화준비조차 넉넉지 않다.
국제적인 자본이동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제약이 가해지고 있으며 금융의 국제화를 감당할만한 경험이나 신용의 축적도 모자란다.
때문에 기업의 국제화문제는 거래의 다양화나 기업 금융력의 다변화라는 측면에선 소극적으로 다루어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이런 한계를 도외시한 채 현지투자나 차관공여 등으로 국제화를 서둘러봐도 결국은 낭비와 부작용만 커질 뿐 기대할만한 성과를 얻기는 힘들 것이다.
따라서 국내단위기업의 국제화가 하나의 흐름이라고는 하지만, 우선은 금융의 국제화가 이루어질 때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다.
더우기 금융의 국제화는 우리의 국제수지구조에 비추어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할 소지가 많으므로 상당한 시간을 두고 선행조건들을 갖추는 조심성이 필요하다.
이 보고서가 지적한 자본의 계열화문제도 국제화의 기반으로서 자본력을 높이는데 기여하겠지만 중소기업중심의 국내 산업구조에서 마찰을 빚어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런 문제들을 조정하는 것이 당면한 산업정책의 소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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