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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한옥의 보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서울시는 28일 고유한옥에 깃들인 민속문화를 전승시키기 위해 4대문 안에 있는 한옥 중 보존 가치가 있는 지역을 골라 민속경관보존 지구로 지정키로 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종로구 안국동·관훈동·재동·가회동 계동·팔판동의 한옥밀집지역과 그 이의 지역의 단일건물이라도 원형보존이 필요한 한옥에 대해서는 보호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이들 한옥은 우리 나라 고유의 건축양식과 건축미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겨레의 숨결과 삶의 애환이 얽혀있는 것으로서 그런 가옥들이 최근 몇 년 사이 도시개발의 거센 물결에 밀려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괴물 같은「콘크리트」고층건물들과 국적조차 확실치 않은 양옥에 눌려 한옥은 이 땅에서 영영 볼 수조차 없게 되지 않을까 하는 심각한 우려와 함께, 문화유산의 보존을 소홀히 하는 무계획하고 졸속에 흐른 도시개발정책은 마땅히 재고돼야한다는 소리가 높아진 것이다.
이러한 때 서울시가 고유한옥을 지방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토록 하는 조치를 취하게된 것은 비록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아직은 잘만하면 성과를 거둘 수 있기에 썩 잘한 일이라 생각된다.
수도서울은 7백만 명의 상주인구를 가진 현대적 대도시인 동시에 장구한 역사와 빛나는 문화유산을 가진 겨레의 요람이자 나라의 심장부가 아닌가.
따라서 우리의 수도 서울을 선진국의 대도시와 비교해서 손색없는 도시로 건설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과거가 현재 속에 살아 약동하고, 현재와 과거가 긴밀히 결부되는 도시로 만드는 일이 긴요한 과제라 하겠다.
서울이 아름답고 생명감 넘치는 도시로 번창하느냐, 아니면「사막도시」로 되고 마느냐 하는 것도 오직 고적의 보존과 개발, 문화유적의 보호와 건설이라는 이율배반적인 명제를 어떻게 하면 슬기롭게 조화시키느냐에 달려있다.
서구의 도시들은 건설과 개발이라는 현실적 필요성을 충분히 감안하면서도 과거의 역사나 전통을 살리는데 오래 전부터 깊은 연구와 끈질긴 노력을 경주해 왔다.
시가지 그 자체가「유적박물관」이라는「로마」의 경우, 고대「로마」의 발상지인「7개의 언덕」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을 뿐 아니라, 현「로마」시는 이 언덕을 중심으로 발전, 그 주변에「베스타」의 신전·「시저」의 신전·「데이트라스」황제의 개선문·폐허 같은 원형극장 등이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그밖에도 도시에는 수많은 유서 깊은 교회·광장·분수·「바티칸」궁·「베드로」대사원 등 고대·중세·근세를 통한 역사와 전통의 결정으로써, 문화·예술의 보고가 조화 있게 보존돼 있는 것이다.
「파리」또한 역사 속의 산 도시이고 문화예술의 향기 높은 도시다. 낡은 것과 새것의 조화, 역사와 현대와의 공존이 잘 이뤄지고 있기에「파리」는「미의 조화도시」의 자랑을 간직 할 수 있는 것이다.
「음악의 도시」「비엔나」역시 수많은 악성들의 기념관·동상 심지어 묘지까지도 마치 그들이 작곡한 음악이 들려 오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킬 정도로 잘 보존돼 있다고 한다.
「런던」·「케임브리지」와 고도「하이델베르크」등은 말할 것도 없고, 이웃나라 일본의 경도와 나량 등도 문화적 유산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나량의 경우 문화인·학자들로 「비조고경을 지키는 회」까지 결성돼 있는 실장이다.
우리도 이런 선진국가의 도시개발정책을 본받아야하겠으며, 개발의 구실 하에 문화유적을「불도저」로 밀어버리거나 함부로 훼손하는 어리석음을 다시는 범하지 말아야겠다.
고유한옥의 보존의 경우, 이미 보존지구 주변에는 회색의 잡다한 건물 등이 들어 경관을 해치는 곳도 적지 않으니 주변정화를 위한 작업이 병행돼야하겠다. 그리고 외형은 그대로 보전하더라도 낡고 허물어진 내부시설만은 항상 보수하고 현대화하도록 해야한다.
그리고 보존지구 지정으로 입게될 주민들의 손해와 불편을 최소한으로 줄일 조치를 강구해야한다. 의무를 부과하면 권리의 보상이 따라야 하는 것이므로, 보호조치에 필요한 효과적인 재정지원과 행정지도에도 소홀함이 없어야겠다. 한옥보존조치를 전국적 규모로 확대하고 또 일정지역의 초가보존도 아울러 고려하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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