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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 문화창조의 기수들|제2회 중앙문화대상 수상자 업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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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족문화유산의 전승과 발전, 새 시대 새 문화창조를 목적으로 중앙일보·문화방송이 제정한 제2회「중앙문화대상」학술 및 예술부문의 수상자가 22일자(이부지방23일자)본지에 발표되었다. 다음은 금년도 수상자의 업적 내용과 심사경과다.

<학술부문 대상|서울대 풍토병연구소-제주도의 사상충 연구>구충사업 기본자료도 제공|치료법 개발 제주도선 감염율 20분의1로 줄여|사상충의 분포지·생태규명
서울대 의대부설 풍토병연구소는 1963년7월 우리 나라에 유행하는 고유한 풍토병을 조사 연구하여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 실천케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국민보건향상에 기여하기 위해 창설된 연구소다(창립당시 소장은 한심석 교수였으며 70년 이후는 서병설 교수가 맡고있다.
창설이래 이 연구소에서는 풍토병에 관한 논문85편을 발표하여 왔는데 그 대부분은 기생충성 풍토병에 관한 것이다.
이 연구소의 13년 간 연구업적 중 가장 노력해온 분야는 첫째로 풍토병성 사상충에 관한 연구였다.
사상충이란 우리 몸의「림프」관이나「림프」샘에 길(사)과 같은 모양(상)의 가느다란 벌레가 살면서 병을 일으키는 일종의 기생충이다.
우리 나라에 분포하는 사상충은「말레이시아」사상충인데 이 기생충은 애벌레를 만들어 낮에는 허파의 가는 혈관 속에 있다가 밤에만 말초혈액에 나타나는 성질을 갖고있어 이 충에 감염되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밤에 혈액검사를 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 연구소에서는 우리 나라에 분포하는 사상충이 어디에 많은가를 알기 위해 각 지방주민과 전국에서 입영하는 장정을 합하여 3만5백34명에게 야간혈액검사를 실시하고 제주도와 경상북도 북부산악지방과 전라남도 해안지방에 심한 유행지가 있음을 밝혀내고 그중 특히 제주도가 전 주민의 8.6%가 감염된 심한 유행지임을 밝혔다.
70년 사상충의 연구를 위해 제주도 서귀포에 풍토병연구소의 분원이 설립되었는데 미국과 일본에서 이 연구를 위해 각종 기재와 약품을 제공받아 본격적으로 제주도지방의 사상충증의 관리 및 퇴치를 위한 기초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를 위해 매년 풍토병연구소연구원 10여명이 참여해 제주도에서도 가장 심한 유행지인 남군 남원면 위미리를 시범마을로 하여 전 주민을 대상으로 6년 간 조사연구가 실시되어 왔다. 검사대상자 1천1백 명 중 2백30명의 사상충 애벌레 양성자가 발견되어 20.7%의 양성율을 보였으며 혈액 20입방「밀리」당 평균 82마리의 애벌레가 있는 아주 심한 유행지임을 알게 되었다.
이 조사지역에서 발견된 전 양성자에「디에칠칼바마진」이라는 구충제를 사용하여 치료를 실시했다. 이 약제를 복용하면 혈액 속에 있던 애벌레가 죽으면서 사람에게는 6∼12시간 후 섭씨38∼40도에 달하는 고열, 사지의 관절통, 심한 두통이 수반되어 이런 고통으로 주민들이 복약을 거부하는 일이 많아 사상충증의 관리자체가 어려워질 정도이다.
이러한 관리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디에칠칼바마진」을 소량으로 시작하는 감량요법을 실시하여 환자를 치료할 경우 부작용을 60%정도로 줄이면서 치료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안을 얻게되었다.
그동안의 관리사업을 실시한 결과 사상충 감염자는70년의 20.7%에서 71년에는9.1%, 72년에는 4.0%,73년에는2.7%, 74년에는 l.5%로 감소하여 이 조사지역의 양성 율이 격감된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풍토병연구소에서는 사상충을 옮기는 모기가 도고·숲 모기임을 밝히고 사상충의 감염형 애벌레를 가지는 비율도 70년의 8.8%에서 74년의 0.3%로 급격히 저하됨을 알 수 있었다.
사상충증으로 인한 주민들의 피해는 상피병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어릴 때 감염되었다가 청장년이 되면 소위「필라리아열」이 생겨 1년에 1∼2회, 심하면 10회씩 몸살이나 몸져눕게 됨으로써 노동력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였으나 관리사업이 끝난 후 주민들은 주기적인 몸살을 하지 않고 계속 일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고있다.
이밖에도 이 연구소의 업적으로 종래에는 우리 나라 폐「디스토마」가 한가지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70년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집쥐에 주로 기생하는「이락촌폐흡충」이 존재함이 밝혀져 이를 실험「모델」로 하여 화학요법 제제의 개발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기초실험성적을 발표하여왔다.
셋째로 한국인에 있어서 기생충 분포에 관한 일련의 연구로서 67년부터 69년까지 4만5백81명의 대변검사 및 8천5백85명의 항문주위 도말법을 실시, 우리 나라 사람들의 장내 기생충 감염실태를 조사한 것으로 이 자료는 그 후 우리 나라에서 시작된 기생충 관리사업의 기본자료역할을 하고있다.

<예술부분 장려상-김자경「오페라」단|「오페라」공연활동>희가극의 가능성 제시|『세빌랴의 이발사』·『나비부인』등 공연|어려운 여건 극복「오페라」인구 저변확대
l968년5월에 창단한 김자경「오페라」단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8년간 매년 봄·가을 두 차례씩 도합 16회의 정기공연과 10회의 지방공연을 가짐으로써 민간「오페라」단체로서는 우리 나라「오페라」25년 사상 일찌기 없었던 업적을 남겼다.
이번 수상대상이 된 공연작품은「롯시니」의 희가극 『세빌랴」의 이발사』,「모차르트」의『피가로의 결혼』,「푸치니」의 『라·보엠』『나비부인』, 「베르디」의『리골레토』등으로 모두 우리「오페라」무대에 문제점을 던져준 성공작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73년12월에 공연한 『세빌랴의 이발사』는 무대장치·조명·의상 등에 새로운 개혁을 가져왔음은 물론 우리 성악인들의 연기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수작이었다. 그뿐 아니라 이 작품은 그때까지 우리 나라 관객에게는 전혀 이질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던 희가극의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우연한 일치일지는 몰라도 이 작품의 성공과 때를 같이하여 연극계에 유행처럼 번졌던 희극「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작품의 성격과 분위기의 차이는 있으나 특기해야 할 또 하나의 공연으로 76년5월에 막을 올린「푸치니」의『나비부인』이 있다. 일본이 무대이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약간의 심리적 갈등을 주기는 했지만 그러나 순수한 예술적 차원으로 승화시킨 그 절실한 비극의 감동은 오래도록 기억을 새롭게 하는 작품이었다. 『세빌랴의 이발사』가 희가극의 진수를 보여준 대표적인 성공작이었다면 『나비부인』은 비극의 정수를 보여준 작품이었다.
김자경「오페라」단은 창단 이후 한번의 결연도 없이 매년 봄·가을 공연을 지켜왔다. 이것은 막대한 제작비·연출자,·그리고 출연가수 등 모든 것이 여의치 않은 우리의 여건 속에서 그것도 민간「오페라」단이 이룩했다는 사실은 하나의 기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김자경「오페라」단이 오늘날 우리 나라「오페라」운동의 구심적 역할을 하는 이유는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평소 단원들에게「오페라」에 대한 이해력을 길러왔고 ②좋은 가수의 기용과 과감한 신인의 발굴·등용 ③유능한 연출자의 초빙 ④연창 및 가사전달 효과의 증진 ⑤꾸준한 지방공연으로「오페라」인구의 저변확대,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⑥결연 없는 정기공연으로「팬」들의 신뢰를 모으고 있다는 점이다.

<예술부문 장려상-화가 박서보씨|서양화「묘법 시리즈」>표현 억제한「구도의 세계」|노장사상에 뿌리박은「제2기」의 작품|50년대부터 우리의 현대미술 이끈 주역
누구도 우리 나라 현대미술의 기수로서의 박서보씨를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는 20여년간 이 땅의 현대미술운동을 주도해 왔을 뿐 아니라 그 현대미술의 짧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국제적인 평가와 성과를 남긴 대표적인 작가이기 때문이다.
홍익대학과「파리」에서, 그리고 20여 회에 걸친 해외연구여행에서 작가수련을 쌓은 그는「유럽」과 남 북미, 그리고 동남아 등 수많은 국제전·.초대전 및 국내외의 개인전을 통해 성장해왔다.
그는 1957년 우리미술사상 처음으로 「엥포르멜」회화운동을 주도, 전후세대를 이끌고 보수적인 기성화단에 도전했으며 60년대엔 세칭「블랙·파워」를 일으켜 우리 현대미술사에 흑색회화시대를 맞게 한 것도 그였다. 이 시기의「원형질시리즈」를「박서보 제1시대」라고 한다.
60년대 후반「오프·아트」가 논리부재 속에 전개되었을 때 그는「허상시리즈」를 통해 문명의 허구성을 신랄히 고발했는가 하면, 이른바 「박서보 제2시대」인 백색회화를 은밀히 추진, 73년6윌 일본동경에서 가진 개인전을 통해 국제화단에「데뷔」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이번 수상작품계열인「단념의 양식」이란「묘법시리즈」가 막을 열었던 것이다.
길고도 오랜 여행 끝에 획득한 박 화백의「손의 여행기」는 동양고전에 심취했던 그가 노장사상에 정신의 뿌리를 내린 무위자연의 세계라고나 할까.
『세상에는 기어이 표현이니 예술이니 하며 얘기나 의미를 화면에 담으려 억지를 부리는 화가가 있는가 하면, 그 불가능성을 깨우쳐 되도록 이면 그저 한 조각 무미한 행위의 흔적에서 바탕을 드러내고자하는 자기순화의 필(후략), 표현욕의 단념과 극기를 위해 수양을 쌓고 도를 닦는 일(후략), 그럼으로써 끝내는 환히 열리는 드맑고 크낙한 해방의 경지를 노닐고자 한다』고 재일 평론가이며 화가인 이우환씨는 그의 작품 세계를 풀이하고 있다.
한마디로「묘법의 세계」는 「구도의 세계」라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독창적인 발상법과 방법론으로 창작에 몰두하는 작가로서는 물론 한국현대미술을 이끄는「리더」로서의 박서보 화백의 업적은 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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