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소서 시드는 왕년의「철권|전「프로·복서」박형권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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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때 4각의「링」위를주름잡던 한「프로·복서」가 아무도 돌봐주는 사람도 없이 폐인이되어 과거의 영광만을 되새기며 6년째 외로운 수용소생활을 하고 있다.
서울시립갱생원(서울서대문구귀산동소재) 제1보호실의 박형권씨(56)
「아라이·곤죠」하면 일제시대 만주에서 이미 그이름을 떨쳤고 해방후엔「웰터」급의 정복수, 「미들」급의 김진용·송방헌씨등과함께 우리나라 「프로」권투계의 정상을 누볐던 철권. 해방후 10여년간 「라이트」급 한국「챔피언」을 보유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광대뼈가 앙상히 튀어나오고 걸을땐 두다리를 후들후들떨며, 말을할때 침을 흘리며 발음도 알아듣기가힘든 폐인이 되었다.
오랜 선수생활로 혹이달린 것처럼 굳어진 주먹과 불룩하게 변형된 오른쪽 눈언저리만이 그의화려했던 과거를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박씨가 권투를 시작한것은 국민학교(원산광명국교)5년때인 15살 때. 18살때 평안·함경도일대서 활약하다 만주에 건너가 봉천·「하르빈」·상해·남경등지서 주먹으로 이름을 날렸다. 중국에서가진 시합만도 50여회.
8· 15해방과 더불어 귀국한 박씨는 46년3월17일 당시 「미들」급의 왕자 김진용씨와의 귀국「데뷔」전서 2회TKO로 통쾌한 승부를 낸후 65년45살의 나이로 은퇴할때까지 2백여차례의 경기를 가졌다.
자세한 승패를 기억할수 없지만 「미들」급의 송방혜씨와는 호적수로 10전3승6무승부1패를 기록했다.
박씨는 65년 인천서 정복수씨와의 10회전경기(무승부)를 끝으로 은퇴했다.
그러나 당시 돈과는 거리가 멀었던 「프로·복서」세계와 권투에 미쳐 결혼도 못했던 박씨가 30여년간 선수생활로 얻은것은 정신쇠약과 수전증이란 후유증뿐.
방한칸 없어 오갈데없는 형편이었다. 함께 월남한 누이 형옥씨(50)가 서울 어느곳에 살고있지만 소식을 모른채 선후배들과 「팬」들의 도움으로 떠돌이 생활을 한것이 5년여.
이제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한 그를더이상뒷바라지 해주거나 찾아오는 사람도 없어졌다.
70년11월23일 서울성북경찰서에서 행려환자로 단속돼 이곳 갱생원에 넘겨진 박씨는 아직도 권투에의 향수를 버리지못하고 있다.
『이것으로 종말을 고할수는 없다. 몸만 회복되어내보내준다면 멋있는 「플레이」를 한번 하고 물러나겠다』고 말하는 박씨의 눈동자는 순간적으로 빛났으나 불끈쥔 주먹만돋보일뿐 그말에는 힘이없었다. <박현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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