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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통신앙이 적중-모 사망 이 얘기 저 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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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모택동은 한때 그를 방문한 고「퐁피두」 「프랑스」대통령에게 자기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 중도좌파 인물이라고 말했었다.
모택동은 지난 1973년 북경을 방문한 「퐁피두」대통령에게 중공농민들은 그들이 수확한 농산물을 모두 국가에 바치지 않고 그 중 일부분을 소유하는 것이 허용된다고 설명했으며「퐁피두」대통령이 이 말을 듣고 의아한 표정을 짓자 모는 『나는 「비스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 중도좌파 인물』이라고 밝혔다고 「모리아크」가 회고했다.
모택동의 사망으로 84세의 「티토」「유고슬라비아」대통령이 20세기에 약 반세기 동안 세계정치 무대에서 활약해온 마지막 거물로 남게되었다.
「티토」는 모택동(82)보다 나이가 더 많다.
모택동은 당산 지진참사에 이어 전통적인 중국신앙에서 나온 비관적인 풍문들 속에서 사망했다.
지난 3월8일에는 길림성 북부지방에 운석이 떨어졌고 5월29일에는 운남성 서쪽에서 강력한 지진이 일어났으며 7월28일에는 북경 동쪽 1백50㎞ 떨어진 당산시에 그 어느때보다 강력한 지진이 일어나 전 시가를 완전히 파괴했다.
8월16일에는 사천성 중부지방에서 또 지진이 일어났는데 이같은 자연현상에 따라 중공전역에 퍼진 풍문은 현 북경정권의 중말 즉 모의 종말에 집중되었었다.
중공당국은 비관적이고 사리에 맞지 않는 풍문을 계속 억제해왔으나 이를 해소하지는 못했다.
지난 수일 동안 북경주재 외교관들에게는 중공정권종말을 주장하는 소책자·소포 및 신문 등이 은밀히 배달됐다.
현재 중공에서 사용하고있는 쉬운 영자로 작성된 소책자의 내용은 정치인이나 정권이 30년을 주기로 교체된다는 중국의 신앙을 상기시켰다.
이 책자는 또 서기전 221년에서 206년 사이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과 모택동의 운명에 비슷한 점이 있다고 밝히고 지난 수년동안 중공에서는 운석의 출현과 한발 등 자연현상이 나타났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모택동의 사생활은 재앙으로 점철돼 있었다. 모의 모친은 1919년 52세의 나이에 급성편도선염으로, 부친은 20년 「장티푸스」로 사망했다한다.
모택동은 1959년 고향에 돌아와 부모의 사진을 붙들고 탄식했다.
『부모님이 오늘날 이병에 걸렸더라면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모택동보다 3세 위였던 형 모택민은 42년 국부군에 체포돼 다음해 감옥에서 독살됐다.
모의동생 모택담은 30세의 젊은 나이로 모의 혁명전시 「게릴라」부대에 가담해 싸우다 전사했다.
모의 유일한 여동생이었던 모택건은 공산당원으로 활약하다 29년 남편 「첸민」과 함께 국부군에 체포됐다.
남편은 현장에서 살해당하고 그녀는 투옥되었다가 「게릴라」들의 도움으로 탈옥하던 중 총상을 입고 다시 체포돼 그 자리에서 총살당했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만24세. 1921년 모가 두번째 결혼한 부인 양개혜는 30년 국부군에 잡혀 31년 30세 생일을 수일 앞두고 처형당했다.
모의 세번째 부인은 신경질환을 갖고 있었다. 소련에서 공부한 모의 장남 모안영은 1950년 한국동란에 참전, 1개월도 못 되어 28세에 전사했다. 그의 무덤은 아직도 북한에 있다. <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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