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누구에게도 도움 안 되는 SSAT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김영민
김영민 기자 중앙일보 기자
강정현 기자 중앙일보 사진기자
SSAT 고사장에 몰려가는 취업준비생들. [강정현 기자]
김영민
경제부문 기자

13일 오후 삼성직무적성검사(SSAT·SAMSUNG Aptitude Test)에 응시한 취업 준비생들은 하나같이 한숨을 쉬거나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시험장을 빠져나왔다. 취준생들 사이에서 이른바 ‘삼성 수능’이라 불리는 SSAT가 전에 없이 어렵게 나온 탓이다.

실제로 이날 SSAT엔 국사와 근·현대사, 세계사 문제는 물론 이전엔 보지 못한 공간지각능력까지 따지는 문항도 등장하는 바람에 지원자들 사이에선 입사 시험이 아니라 마치 수능시험을 치른 것 같다는 푸념이 나왔다. 시험 직후 주요 포털에는 “암기·문제풀이 위주의 수능 역사 문제가 과연 입사 지원자의 실무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냐” “삼성에 들어가려면 토르·아이언맨·울버린·수퍼맨 등 영화 속 영웅도 다 알아야 하느냐”는 글들이 적지 않게 올라왔다. 삼성은 곤혹스럽다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입사 지원자 10만여 명을 단 한 차례 필기시험만을 통해 걸러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세계사 문제나 도형 블록까지 맞혀야 하는 민간 기업 입사시험의 난이도가 아니다. 20여 년째 SSAT에 묶여 있는 삼성을 비롯해 국내 대다수 기업이 ‘채용 혁신’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더욱 심각한 문제다. 당초 창의적인 인재를 찾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SSAT마저 어느새 공식과 암기 비법으로 정답을 골라내는 ‘족집게 취업학원’과 관련 교재 출판사만 배 불리는 고시로 전락했다.

 삼성의 한 고위 임원은 “그룹 입장에서도 출제된 문항들이 과연 삼성에 적합한 사람을 뽑기 위한 것인지 솔직히 헷갈린다”며 머리를 흔들었다. 삼성과 국내 대기업들이 이처럼 시대착오적인 입사 공채에 발이 묶인 것은 사회에도 책임이 있다. 일부 대학과 시민단체·정치권, 심지어 언론까지 정치적 이해관계에 휩쓸려 ‘기계적인 입사 기회 제공’만을 고집하면서 이에 따르는 사회적 낭비를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상·하반기로 나눠 두 번 실시하는 SSAT가 치러질 때마다 10만 명 안팎의 지원자가 몰린다. 연간 대졸자 48만 명 중 40%가 삼성이란 한 회사에 쏠리는 이런 모습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몰려드는 지원자들을 얼마나 많이, 효율적으로 떨어트리느냐는 쪽에 초점이 맞춰진 이런 공채 시험은 기업, 취업준비생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정부는 취준생들이 특정 대기업에만 쏠리지 않도록 취업 시장을 더욱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기업은 필요한 직무능력을 갖춘 인재를 심사숙고해 뽑는 쪽으로 한시라도 빨리 방향을 틀어야 한다.

글=김영민 경제부문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