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 5천년」의 정수 국내전 계기 지상 소개>(1)비취빛 정자의 미|김영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일본 땅에서 한국문화·예술의 탁월성을 과시했던 한국미술 5천년전의 귀국 전시회가 9일부터 국립 박물관 특별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우리 문화·예술의 어떤 점이 그들을 감탄케 했으며 그들의 그릇된 편견을 뒤바꾸어 놓았는가 귀국전을 계기로 관계전문가들의 소개로 우리 조상의 슬기가 담긴 미술품을 재음미해본다. <편집자 주>
한국 미술사상 가장 찬란했던 조형과 기법을 세계에 떨쳤던 고려의 청자기, 이는 그야말로 우리의 자랑이요, 천년의 꿈이 아닐 수 없다.
본래·청자는 중국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초기의 것은 은주 시대의 회유도에서 조형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완전한 의미의 청자는 복건성의 월주요라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송대에 청자의 제조법이 가장 발달, 오늘날 재현하기 어려운 청자기가 다량으로 제조됐다.
지금 남아있어 우리의 귀중한 문화 유산이 되고있는 고려청자는 대부분 처음 도입된 후 1백여년이 경과 그 제조기술이 극치에 이르렀을 때의 작품들이다.
고려책자의 아름다움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느낄 수 있다. 첫째는 그 매끄러운 곡선의 멋이 요. 둘째는 비색의 그윽함이요, 세째는 그 문양의 절묘함이다. 비록 기형은 대륙의 것을 본뜬 것이나 그 선은 우리의 것이다. 흔히들 우리 미술품의 아름다움은 선에 있다고들 한다. 그만큼 우리 고유의 선은 뚜렷한 특색을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바닥 깊숙이서부터 떠오르는 듯한 푸르디푸른 비취옥색, 스스로 「비색」이라 이름지어 중국의 「비색」과 구별코자 했던 고려도공의 긍지는 우리 것의 독자적인 특색과 품격에 대한 자부심의 발로일 것이다. 일찌기 송나라 사절단으로 고려에 왔던(1123 AD) 서긍이 『선화봉사 고려도경』에서 고려청자의 아름다움과 솜씨를 극구 칭찬한 것이라든지 또 『학해유편』에 수록된 송대 문헌 「신중기」에서 태평노인이 자기 나라 것을 제쳐놓고 고려 청자의 빛깔을 「천하제일」로 꼽았던 것을 보면 당시고려청자의 국제적 명가가 짐작된다 하겠다.
초기 청자시대(11C말·12C초)의 순청자의 깊고 순수한 발색과 높은 격조는 처자중의 청자로서 단연 으뜸이다. 소문이거나 양각·음각의 간략한 표현, 오리·원숭이 등 오밀조밀한 물형들, 고르고 얇은 대토, 단정한 기형에 유빙제 없이는 티없이 맑은 유조는 고요한 동해를 연상케 한다. 상감청자시대(12C중)의 상감기법의 창안은 우리의 멋이요 흥이다.
한마디로 상감의 문양은 문양이면서도 문양이 아니다. 이는 한 폭의 그림이다. 기면의 공간처리는 화폭의 여백이다. 깊고 푸른 하늘에는 학과 구름이 넘나들고 버드나무 아래 물가에는 오리들이 한가히 노닌다. 아이들은 포도를 따고 고기를 잡는다.. 이는 정녕 기벽을 화면 삼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우리주변의 낯설지 않은 정경들이 된다. 이와같이 청자 상감의 문양의 극치는 이런 회화 미에 있다.
말기의 화청자 시대(14C)에 들어오면 소박하다. 그리고 대담하다. 거리낌없이 휘두른 화필은 거칠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조초기에 빛나는 분청자기의 개화의 여명은 바로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다. <윤송 미술관 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