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정치인의 망명처 아르헨티나에 높아진 암살 위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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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남미 좌파 정치인의 망명 처로 각광을 받아 오던 「아르헨티나」의 「붸노스아이레스」도 이제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안전한 곳은 못 되고 있다. 지난 6월 초 망명 생활 중이던 「볼리비아」대통령 「토레스」의 피살을 절정으로 좌파 망명 정치인들에 대한 암살 사건이 잇달고 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는 정변이 잦은 남미에서 전통적으로 좌파 세력이 강한 탓으로 실각한 남미각국 좌파 정치인들이 피신 생활하기에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안성마춤이었다. 특히 73년 「칠레」의 「아옌데」의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진 뒤 「아르헨티나」의 좌파 정치인에 대한 이용도는 더욱 늘어났다.
그래서 「토레스」가 피살되기 전 만해도 「붸노스아이레스」에만 정변으로 쫓겨난 전직 대통령이 4명이나 있었다. 즉 「브라질」의 「굴라르」, 「에콰도르」의 「벨라스코」, 「볼리비아」의 「수마조」·「토레스」 등이 망명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들 외에도 전직 장관·국회의원·장성과 이들 밑에서 일하던 사람 등 굵직한 인물들이 수두룩하다.
물론 이들 중에는 극소수 우파 인물들도 있지만 거의가 좌경노선을 걷다가 하나 같이 군부 「쿠데타」로 쫓겨난 사람들이다.
그런데 지난 5월 「우루과이」에서 망명해 온 전직 장관과 하원 의장이 의문의 변시체로 발견된 뒤를 이어 6월에는 「토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이 머리에 세 발의 총을 맞고 살해되고 나서부터 그동안 「붸노스아이레스」에 안주해 오던 좌파 정치인들이 위협을 느끼게 된 것이다.
정치적 성격의 「테러」가 으례 그렇듯이 이들 일련의 암살사건이 배후가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좌파 망명 정치인뿐 아니라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은 「비델라」정권에도 사건의 동태에 큰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특히 「토레스」의 피살은 그 배후 동기가 여러 갈래로 추측되고 있어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하고 있다. 그를 축출한 현 「볼리비아」정권에 의한 행위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파가 현 정권에 문제를 일으키기 위해 저지른 소행이라는 전연 딴판의 추측도 있다.
그런가하면 「아르헨티나」의 극우 단체가 자기네의 「비델라」정권에 문제를 일으키거나 강경 노선을 강요하기 위해 저지른 소행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다. 정상적인 민주화의 약속을 내건 「비델라」정권으로 하여금 강경 노선을 걷게 함으로써 약속이행을 못하게 하려는 극우파의 소행이라는 추리다.
그런데 정작 「아르헨티나」 정부는 「토레스」의 피살에 대해 「비델라」 정권의 진로를 막기 위한 국외 정부 전복 단체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볼리비아」정부는 과거 「볼리비아」에 정치 보복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자기네 관련설을 극구 부인하고 있다.
이처럼 아리송한 「토레스」의 피살은 그러나 엉뚱하게 「아르헨티나」에 화가 미쳐 광산노동자의 파업과 학생 「데모」를 유발, 계엄령까지 선포하기에 이르렀고 겨우 두 달 밖에 안 된 「비델라」정권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상파울루〓허준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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