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야생초에 너무 탐닉 마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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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대구의 한 독자 분이 내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다. 야생초는 자연 상태에 그대로 있을 때만이 야생초이지 그것이 정원에 고이 심어질 때는 이미 야생초가 아니라고.

야생초의 복권을 노래한 것은 고맙지만 그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 야생초 붐이 일어나면 의도와는 다르게 야생초의 수난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제발 야생초를 갖고 그만 떠들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심지어 어떤 독자는 내가 야생초의 '효용'에 대해 밝혀놓은 것을 두고 '천기누설'이라고까지 말을 한다. 모두 다 생명을 사랑하고 아끼는 고귀한 마음으로부터 나온 충고다.

확실히 우리 사회에는 신기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과도한 편집증이 있는 것 같다. 특히 건강에 관해서는 체면이고 뭐고 없다.

무엇이 건강에 좋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가서 뿌리를 뽑아버리고, 새로운 무엇이 나타나면 또 우르르 몰려가고… 이러한 세태에 '야생초 편지'가 베스트 셀러가 됐으니 진정 야생초를 사랑하는 사람들로서는 걱정이 아니 될 수 없다.

어이없는 일이지만 책이 출간된 직후 가장 먼저 인터뷰를 요청한 어느 잡지사의 기사 제목은 '황대권의 야생초 건강법'이었다. 어떤 야생초를 어떻게 먹고 건강이 좋아졌다는 식의 건강법이야말로 건강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왜곡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원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당신들의 인터뷰에 응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러자 그들은 선생님의 견해를 그대로 실을 테니 인터뷰를 하자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내 견해를 그대로 싣겠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야생초 몇 가지를 먹고서 건강이 회복된 것이 아니라고 단호히 말했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선 약도 물론 중요하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과 생활패턴을 건강하게 바꾸는 게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야생초 건강법이 효과를 보려면 야생초를 사랑하고 야생초와 하나가 되려는 마음가짐이 선행돼야 한다. 달리 말하면 생명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이 있어야 하는데 도시의 아파트에 앉아 배달돼 온 녹즙이나 받아먹고 장사꾼들이 마구잡이로 캐어 와 화분에 담아 파는 야생초를 들여다보면서 그런 깨달음이 생길 수 있을까.

사람들이 현재와 같은 착취적인 도시구조 속에 갇혀 살면서 야생초 붐에 휩쓸리게 되면 야생초가 일대 수난을 겪게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서 나는 어디에 가서 자신을 소개할 경우가 생기면 '야생초 연구가'가 아니라 '생태공동체 운동가'로 소개한다. 생태공동체에서는 자연생태계가 훼손되지 않으면서 인간과 야생초가 공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야생초 편지'에서 진정 말하고자 한 것은 우리 인간의 생명만큼이나 다른 모든 생명들이 소중하며, 개개의 생명들은 서로 연관돼 하나의 커다란 생명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생태계 안에서 야생초가 어떤 위치에 있고 인간들과 어떤 공생 관계에 있는지는 아랑곳없이 야생초 자체에만 탐닉해 또 다른 생명 파괴에 나선다면 나는 '야생초 편지'의 출간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만약 '야생초 편지'를 읽고 뒤늦게 야생초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분들께 야생초를 단지 취미나 호기심 정도로 대할 것이 아니라 '생명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주기를 진심으로 당부한다.

'생명의 관점'에서 야생초를 바라보게 되면 야생초와 우리가 함께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이 틀림없이 보인다.

황대권<생태공동체 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