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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교양] '사찰 꽃살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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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꽃살문/사진 관조, 글 이내옥/솔출판사, 3만5천원

절을 뜻하는 가람은 '여러 승려들이 즐겨 모이는 곳'이라는 인도말 'samgharama(僧伽藍摩)'에서 왔다.

가람은 속세와 인연을 끊고 불문에 귀의한 스님들에게 몸과 마음을 닦는 모든 살림살이가 담긴 큰 그릇이었다. 절이 물질과 관념, 쓰임새와 수행을 아우른 복합공간이 된 까닭이다.

그래서 건축사가 김봉렬씨는 가람을 "입체적으로 표현된 건축적 경전이자, 신앙의 거대한 만다라"라고 부른다.

사찰 문에 피어난 꽃살문(紋)은 그 경전 가운데서 가장 작고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법(法)이라 할 수 있다. 법당 안과 밖을 이어주는 문을 소복하게 덮은 그 꽃들은 무심하게 드나드는 모든 중생들을 염화미소로 맞고 보낸다.

부처의 극락으로 들어서는 길에는 늘 미륵불빛처럼 일렁이는 꽃이 있다. '묘법연화경'은 부처에 대한 최고의 경배 가운데 하나로 '꽃으로 장식하기'를 꼽았다. 꽃살문은 종교적 장엄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경전이다.

스님 사진가 관조(觀照)는 그 경전을 사진기로 한 잎 한 잎 읽어간다. 한 조각 꽃을 뿌려 보낸 "멀리 도솔천의 부처님을 맞이하라"는 '삼국유사'의 게송이 그 꽃살문 사진들과 함께 노래한다.

내소사 대웅보전의 빛모란연꽃살문, 선암사 원통전의 모란꽃살문, 범어사 팔상전의 격자매화꽃살문, 용문사 대장전 윤장대의 솟을꽃살문…진리로 향하고, 극락으로 이르고, 깨달음으로 열리는 문 위에 화엄에서 캐온 꽃피었다. 평생을 절살림을 해온 스님의 눈이 아니면 잡아낼 수 없는 화개(花開)다.

이내옥 국립청주박물관장은 책 뒤에 붙인 해설에서 조선 사찰의 꽃살문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독특한 한국성을 지닌 우리의 문화유산"이라고 자랑한다.

"긴장이나 격의가 없는 포근함과 다정함이 배어" 있고, "사용된 선 역시 우리 야산의 과장 없는 능선이나 시골의 돌담길, 논두렁 밭두렁의 선을 닮고 있다"고 썼다.

이 책에 실린 관조 스님의 사진들은 오는 4월 27일까지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열리는 '사찰 꽃살문 사진전'에서 볼 수 있다. 043-255-1632.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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