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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금녀의 전통에 도전한 스페인 여자 투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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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년 전부터 여자도 허용>
우렁찬 「팡파르」가 울리면서 금실 은실로 수놓은 화려한 복장의 투우사가 경기장에 나오면 며칠동안 어둠 속에 갇혔던 맹우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든다. 투우사의 붉은 「카보테」「(망토」 같은 것)를 보고 더욱 화가 난 검은 뿔 소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보지만 우둔하게도 번번이 투우사의 옆만 스칠 뿐이다. 관중들의 환호에 답해 투우사는 예리한 칼을 높이 쳐들고 날뛰는 소의 숨통을 겨눈다. 드디어 맹우는 육중하게 무릎을 꿇고 관중들은 모두 기립해서 열광하는 가운데 투우사는 승리에 도취해서 자신을 뽐낸다.
투우란 사람이 칼로 소를 찔러 죽이는 것뿐이고 어떻게 보면 잔인하기 그지없는 행위인데 「스페인」 사람들은 왜 그렇게 투우에 열광하는지 이방인으로서는 짐작 할 수가 없다. 한때 투우 폐지론도 있었다지만 지금도 「마드리드」의 경기장은 성황을 이룬다. 『남자는 투우, 여자는 「플라멩코」』라는 「스페인」에 이제는 여자 투우사까지 등장했다니 더욱 놀라운 일이다.
『지금까지 소를 한 3백마리는 죽인 것 같아요. 내가 소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은 아마 천직이기 때문인가 보죠?』 처녀 투우사 「앙헬라·에르난데스」 (26)는 스스럼없이 서두를 꺼낸다. 날씬한 몸매 (그는 165㎝에 몸무게가 50㎏이라 했다)에 금발의 미인인 그가 소를 찔러 죽이는 투우사라고는 전혀 믿어지지 않는다.
「에르난데스」양은 2년 전 「스페인」에서 여자 투우사가 허용된 후 처음으로 등장한 직업 투우사다. 화려한 투우복을 입은 미녀가 경기장에서 소와 대결하는 긴박한 장면은 관중들에게 색다른 「드릴」을 안겨준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소를 홀려서 죽이는 투우사』라고 열광한다고 한다.

<관중들에겐 색다른 「드릴」>
「에르난데스」는 특히 「카보테」에 뛰어난 투우사로 이름나 있다. 그는 이제 「스페인」에서 일류 투우사의 자리에 올라서 한번 시합에 60만 「페세타」 (약 4백60만원)를 받고 있다.
투우의 나라 「스페인」에는 현재 투우 협회에 등록된 직업 투우사가 약 60명. 전국의 50여개 투우장에서 이들이 바꾸어 가면서 「게임」을 벌이는데 「마타도르」로 불리는 이 투우사들은 처음 소를 운동장에 끌고 나와 눌리는 보조원과 말을 타고 지나가면서 소의 등에 여섯개의 화살을 꽂아 소의 기운을 빼내는 보조원, 그리고 소의 뒷골 급소에 「리본」을 달아 뒤에 「마타도르」가 긴칼을 꼽을 수 있도록 자리 표시를 해주는 보조원 등 모두 5명의 보조 투우사를 거느리면서 「게임」을 지휘하게 된다.
「마타도르」는 보조원들이 먼저 나와 차례대로 소를 화나게 하여 흥분시킨 다음에 등장, 처음에는 폭이 넓은 분홍색 「카보테」로 소를 눌리고 다음엔 약간 작은 진홍의 「케이프」 인 「물레타」로 소를 더욱 가까이 유도하여 칼을 등에 꽂아 죽인다. 「마타도르」가 등장하여 소에 칼을 꽂아 숨지게 하는 「게임」 시간은 20분. 20분 안에 소의 심장에 칼을 꽂지 못하면 투우사에게 가장 모욕적인 패배가 선언된다.
투우의 용어에 「진실의 순간」 (모멘토·델라·베르다드)이라는 것이 있다. 투우사가 「페스·카베이요」 (끝이 약간 굽은 칼)를 소의 등에 찔러 심장까지 칼을 깊숙이 꽂는 때를 말하는데 즉 소가 사람의 칼에 맞아 숨을 거두는 순간을 이르는 말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이 투우를 가리켜 소를 가장 예술적으로 죽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처녀 투우사 「에르난데스」는 이 「진실의 순간」에 대해 『소가 죽었다는 가슴 아픈 생각보다 아, 내가 무사했구나 하는 안도감이 앞선다』고 담담하게 얘기한다.

<20분 안에 칼 꽂아야 승리>
「에르난데스」는 6세 때 아버지를 따라 투우장에 구경 갔다가 숱한 관중의 환호를 받으면서 붉은 「물레타」를 흔드는 투우사를 보고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투우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내가 워낙 가난하게 자랐기 때문에 이 어려운 투우사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에르난데스」는 9살 때부터 신문팔이 감자장수 바느질 심부름 등을 하면서 집안 살림을 보태왔다고 한다. 하루 일이 끝나기가 무섭게 투우사들이 연습하는 운동장에 가서 구경을 하고 그것을 다시 혼자 연습했다는 것이다.
『15살 때부터 본격적인 투우 연습을 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스페인」에선 여자가 「게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멕시코」로 가서 보조 투우사로 시합에 나가 봤어요』 그는 18살 때 「멕시코」로 건너가 여자 투우사로서 직업 선수 생활을 했다. 여자 투우를 인정하는 그곳에서는 「에르난데스」는 상당한 인기를 얻었으나 수입의 대부분을 「매니저」에게 뺏겨 언제나 가난한 선수 생활을 했었다.
요즘은 「스페인」에 돌아와 2년만에 「에르난데스」는 「세빌랴」에 1백만 「페세타」의 「아파트」와 「벤츠」 한대를 갖고 1년 내내 공휴일과 일요일마다 「게임」에 나가는 바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현재 「스페인」에는 「에르난데스」 이외도 15명의 여자 투우사가 생겼으나 대부분 아직 어린 소 (1∼3살짜리)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

<하루 4∼5시간씩 연습>
투우에 나가는 소는 「브라보」종으로 몸무게 4백70∼5백㎏, 나이가 3살에서 5살까지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여자 투우사에겐 처음엔 2살짜리만 허용했으나 요즘엔 4살짜리도 하고있으며 「에르난데스」는 대개 3, 4살짜리와 싸운다.
『저는 소와 마주 쳤을 때 제일 먼저 눈을 마주칩니다. 대개 눈을 보면 언제 어떻게 공격해 올지 알거든요.』 투우장에 나오는 소들은 대개 목장에서 운동장으로 실려와서 어두운 방에 3, 4일 가두어 놓았다가 「게임」때 풀려나 온다. 이 소들은 전혀 투우의 경험이 없어야되는데 (경험이 있으면 절대 속지 않으니까 「게임」이 되지 않는다) 며칠씩 어두운데 갇혔다가 나오기 때문에 더욱 사나와 진다는 것이다. 투우사들이 연습했던 소들은 대개 한번 연습하고 그 자리에서 죽여버린다.
「게임」에 출전했던 소들은 죽은 다음 고기로 정육점에 팔려 가는데 투우장에서 죽은 소는 피를 많이 흘리고 죽기 때문에 그 고기가 유난히 맛있다는 것.
투우를 위해 그는 하루 보통 4, 5시간씩 연습하는데 축구와 「테니스」로 허리와 팔을 단련시킨다. 그는 투우사가 마지막 칼을 힘차게 소의 심장에 꽂아야 하기 때문에 벌써 오른팔에 알통이 크게 생겼다면서 내보인다.
『소를 아슬아슬하게 넘어뜨리고 관중들의 환호를 받고 심판관들로부터 잘했다고 소의 귀를 잘라 받았을 때 무엇보다 기쁘지요. 그 기분 때문에 투우사를 계속할 것입니다. 그는 많은 남성 「팬」들의 만인의 애인이 되고 싶을 뿐 『사랑엔 관심이 없다』고 고개를 젓는다. 언제나 남자 투우사들 「게임」보다 손님이 많아 전국의 투우장에서 항상 「스케줄」이 밀린다는 그는 자신이 너무 열정적으로 뛰어들기 때문에 부상을 잘 당하는 것이 커다란 흠이라고 그것을 걱정했다.
작년 8월 「바로셀로나」에선 크게 다쳐 등에 1백60바늘을 꿰매는 대수술을 하고 6개월간이나 병원에 입원했었다.
『투우사가 운동장에서 죽는 것도 멋있지요. 투우를 위해 열심히 뛰어든다는 정신이 중요하니까요.』「게임」에 나갈 때는 소풍 가는 기분으로, 그리고 소에게 아름다운 눈빛을 보이기 위해 눈 화장을 열심히 한다는 「에르난데스」는 벌써 앞으로 1년간의 「게임」「스케줄」이 꽉 차 있다고 자랑했다.

<「마드리드」에서 윤호미·장홍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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