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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비 지원, 전남 0 인천 84만원 … "정부, 보육원 예산 가이드라인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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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전남 순천시 순천역에서 택시로 20분을 달리자 와룡산 초입에 있는 SOS어린이마을이 보였다. 벽돌로 지은 단층 단독주택 10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가장 가까운 수퍼마켓이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을 만큼 외진 곳이었다. 이곳은 보육교사 7명과 아이들 75명의 보금자리다. 교사들은 모두 독신 여성이다. 아이들은 이들을 “엄마”라고 부른다. 2호 집의 안주인은 1986년부터 아이들을 키워온 김명순(54)씨다. 김씨는 갓난아기 때부터 키워온 하수연(16·가명·고1)양의 영어와 수학 학원비 20만원을 자신의 월급에서 댄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아이들 학원비 예산을 따로 지원하지 않아서다. 김씨는 “그나마 학원 선생님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원래 28만원이던 학원비를 할인 받아 다행”이라 고 말했다.

 충남 논산시 연산면 계룡학사에는 탭댄서의 꿈을 키우는 김시우(14)군이 산다. 김군의 탭댄스 레슨비(연 300만원)는 한 복지재단에서 지원하지만 레슨비를 뺀 의상비·특별레슨비(한 달 10만원)는 지자체에서 보탠다. 유창학 계룡학사 원장은 “넉넉하진 않지만 아이들에게 지원되는 학원비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는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다 알 것”이라고 했다.

 사회복지사업 예산이 중앙정부에서 지자체로 넘어간 지 10년이 흘렀다. 지자체의 보육원에 대한 지원도 천차만별이고, 그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지자체별로 재정자립도와 단체장 관심도에 따라 보육원에 지원되는 예산이 달라서다. 아이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따라 복지 혜택이 달라지는 ‘보육원 속지주의’ 현상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충청남도는 참고서 구입비(1인당 연 8만원)와 심리정서프로그램비(1인당 연 5만원)·체험활동비(1인당 연 6만원)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전라남도는 이와 같은 항목의 예산을 지원하지 않는다. <그래픽 참조> 그렇다 보니 민간 후원금에 따라 아이들의 복지 수준이 결정된다. 순천 SOS어린이마을 문성윤(전남아동복지협회장) 원장은 “지역 간 차별이 없도록 보육정책을 중앙정부에서 마련해 줘야 한다”며 “아이들이 먹고 자는 주택이 33년 전에 지은 낡은 건물이라 수선할 곳이 많지만 손도 못 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한 끼 1978원(30인 이상 100인 미만 기준)에 불과한 보육원의 식비도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에겐 열악한 수준이다. SOS마을 교사 김명순씨는 “장을 볼 땐 가격표만 본다”며 “작년에는 한 끼 식비가 1527원밖에 안 됐는데 그나마 오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엔 두부 위주로 먹였어요. 자라는 애들에게 제일 필요한 게 단백질인데 똑같은 단백질이라도 쇠고기·돼지고기와 두부는 엄연히 다르잖아요. 가격만 놓고 보면 10배 이상 차이가 나니까.”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김씨는 지난해보다 식비가 451원 올랐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했다. 보육원 식비는 초등학교 한 끼 식비(3110원·서울시)에 훨씬 못 미친다.

 전문가들은 보육원 정책을 총괄하는 중앙정부의 전담 조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국아동복지협회 이혜경 부장은 “보육원에 대한 예산이 지방으로 이양된 후 시설을 골라 아이를 보낸다는 얘기도 들린다”며 “정부가 보육원 예산 등 전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 281개 보육원은 정문에 ‘열악한 아동복지재정! 중앙정부로 환원하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소리 없는 시위를 하고 있다.

◆특별취재팀=강기헌·장주영·이유정·정종문·장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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