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두 아이 싸움에 골치 아프다는 40세 직장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6면

Q 8살 딸과 6살 아들을 둔 40세 직장인입니다. 두 녀석이 어찌나 싸우는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하루는 애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동화로 만든 책을 사주었는데 서로 자기 거라며 싸우는 겁니다. 참다못해 책을 북북 찢어버렸습니다. 큰애는 울면서 스카치테이프로 붙이고, 작은아이는 풀이 죽어 한쪽에 앉아 우네요. 화 안내고 아이들을 잘 돌보고 싶은데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심하게 싸우는 건 비정상 아닌가요. 그리고 애들이 싸울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궁금합니다.

A 형제간 경쟁(Sibling rivalry) 때문에 고민하는 부모가 적지 않습니다. 마치 원수라도 되는 양 너무 심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면 결국 분노가 터져 나와, 애들 주려고 산 책까지 북북 찢게 됩니다.

 부모를 괴롭히는 형제 간 경쟁은 언제 시작될까요. 한 연구에 따르면 막 걷기 시작하는 한 살부터라고 합니다. 그러니 경쟁과 질투는 학습이라기보다 이미 유전자에 갖고 태어나는 본능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제 막 뒤뚱거리며 걷기 시작하는 아이가 ‘부모가 형(또는 동생)한테만 잘해주는 건 아닌가’라는 경쟁심을 느낀다는 거니까요.

 형제간 경쟁은 꼬마일 때뿐 아니라 청소년기 내내 지속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10~15세에 가장 심하게 경쟁한다는 연구 보고도 있습니다. 어릴 때는 질투심 자체가 형제와 싸우는 일차적 원인인 반면 청소년기에는 부모 관심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면이 강합니다. 형제에게 특별히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라 부모 관심을 끌기 위해 의도적으로 한 판 붙는다는 거죠. 하여간 부모 입장에서는 큰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심하게 싸우는 걸 보면서 ‘내가 잘못 키웠나, 내가 좋은 부모가 아닌가’라며 좌절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부모를 괴롭히는 형제간 경쟁은 어른이 되면 줄어들까요. 네, 경쟁심은 계속될 수 있지만 눈으로 보이는 갈등 행동은 대체로 줄어듭니다. 특히 부모님이 병에 걸린다든지 하면 경쟁심은 줄고 오히려 형제 사이가 가까워집니다. 60세를 넘기면 대부분 형제애가 돈독해집니다. 심하게 다투던 집안 형제 어르신이 머리가 허얘진 후 살갑게 지내는 걸 보게 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형제간 경쟁심은 왜 생길까요. 경쟁은 생존을 위해 남을 이기려는 겁니다. 생존은 모든 생명의 기본 본능입니다, 그렇다보니 동물에게서도 형제간 경쟁을 쉽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생존에 가장 중요한 존재인 부모를 공유하다보니 불안감이 생기고, 그 불안이 경쟁심과 형제에 대한 공격적 행동을 유발하는 겁니다.

 형제간 경쟁심은 왜 생기는 걸까요. 우선 가족 내 관계를 이해해야 합니다.

 부모는 스스로 선택한 짝과 가정을 이뤘지만 형제는 다릅니다. 내 선택과 무관하게 상대방이 존재합니다. 그렇다보니 때론 성격이 달라 부딪힐 수 있고, 또 때론 형을 원하는데 누나여서 싫을 수도 있는 겁니다. 안 그래도 가족 내 경쟁자인데 만약 취향마저 서로 안 맞으면 형제간 전투는 더 치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족 내 위치에 따른 스트레스도 영향을 끼칩니다. 형은 동생에 대한 책임감이 부담스러워 힘들고, 동생은 앞서 나가는 형을 따라잡는 게 스트레스입니다. 쫓고 쫓기며 경쟁하는 거죠.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도 한 요인입니다. 부모 모두가 자녀를 편애하지 않고 똑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매우 어렵습니다. 옛말에 다섯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느냐지만, 실제론 더 끌리는 자녀가 있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고2 큰아들보다 이제 겨우 7살인 늦둥이가 아빠 눈엔 너무 예쁩니다. 하는 행동이 꼭 자기 분신 같습니다. 타고난 취향이 비슷하니 같이 놀 때 만족감도 더 큽니다. 형은 그런 아빠 얼굴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아빠가 아무리 “너희 둘을 똑같이 사랑한다”고 이야기해도 당연히 믿을 수 없지요.

 이럴 땐 양적인 공평전략(fair strategy)보단 질(質)을 중심으로 하는 맞춤형 공평전략이 효과적입니다. 아이 셋이 있는데 안아주고 싶은 건 막내지만 다른 형제가 신경쓰여 모두 다 안아 주는 게 양적인 공평전략입니다. 포옹은 자연스러운 감정이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이어야 하는데 규칙처럼 모두에게 적용하다 보니 정서적 가치가 떨어집니다.

 이에 비해 맞춤형 공평전략은 자녀의 나이와 성(性), 그리고 취향에 맞게 놀아주고 반응하는 것입니다. 자녀 입장에선 부모가 나만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자신을 더 특별하게 느낍니다. 형제간 질투가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아직 손이 많이 가는 어린 동생에게 부모는 정성과 시간을 더 쏟을 수밖에 없습니다. 큰아이는 섭섭해서 부모에게 짜증을 내거나 동생과 싸우기도, 또는 어린애처럼 퇴행현상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행동을 두고 “네가 형이니까 이해해”라고 말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형이라고 해봐야 역시 어린 아이일 뿐이니까요. 아이가 감당하지 못할 역할을 주고 이해를 강요하는 것보다 동생이 잠든 사이 큰아이와만 할 수 있는 놀이를 함께 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부모가 “동생과는 하지 않는 너랑만 하는 놀이가 있다”는 메시지를 형에게 주면 형제간 경쟁 심리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부모 사랑을 되찾기 위해 동생 나이처럼 행동하는 퇴행 현상도 막을 수 있고요.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네 언니는 네 나이 때 신발끈 혼자 맸어” 같은 말은 좋지 않습니다. 어린 아이는 누구나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군가와 비교돼 평가절하되면 화를 냅니다. 형제간 경쟁은 더 심해지겠죠.

 형제간 경쟁심은 사실 매우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누구든 형제에게 질투를 느낍니다. 그렇기에 부모는 이런 자녀를 너무 심하게 야단칠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자녀가 마음 속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러나 느낌과 행동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화가 났다고 상대방을 물리적으로 괴롭히면 안 된다는 겁니다. 이런 행동을 보이면 ‘벽 보고 10분 있기’ 등 규칙을 정해 즉각적으로 제재해야 합니다. 어떤 형태이든 물리적 폭력이 발생하면 맞는 쪽뿐 아니라 때린 쪽도 죄책감 때문에 건강한 자존감 형성을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