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르고 선도해도 입신하기 어려운 요즘젊은이들인데 그들이 몽둥이 들고 정당 싸움에 끼어든 현실 왜 외면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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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청소년 문제가 심각하다』고들 이야기하지만 청소년을 어떻게 선도해야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은것 같다. 마치 방관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태도들이다.
그리하여 얼마 전 어느 정당의 전당대회과 심상치 않은 분위기 속에 진행되어 끝내는 폭력난동으로 매듭지어졌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그 정당의 향배에는 관심을 가졌으나 그 폭력난동이 젊은 이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데는 별다른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 정당이야 어떻게 되든 먼저 한탄해야 할 것은 왜 젊은이들이 그러한 싸움에 끼어 들어야만 되었느냐는 것이다.
이제 갓 주민등륵증이나 발급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10대의 청소년들.
이들이 대관절 어쩌자고 눈에 살기를 담으며 몽둥이를 휘둘러 대고 있는 것인가. 무슨 엄청난 변란이 일어났다고 불원천리 작당 상경하여 여관방에 기식하면서까지 임전무퇴의 실력쟁패를 벌였더란 말인가.
지금에 와서 새삼스럽게 당시의 상황을 되살리며 성토를 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 이런 정치파행에 대해서 다시 한번 돌을 던지며 매도하자는 뜻도 절대 아니다.
다만 같은 젊은이, 같은 시민, 같은 국민의 입장에서 상심을 감출길이 없었던 것이다.
「카이저」의 것은「카이저」가 되고픈 자들끼리 싸워서 갖도록 하라. 차마 장본인이 나을 수 없다면 그들의 일족이나 형제가 나와서 다투도록 하라. 그것도 어렵다면 자신의 영화를 나누어 누릴 자식들에게 쇠몽둥이를 들려주어 장차의 세도가 얼마나 거센 피땀으로 얻어졌는가를 진작부터 실감토록함이 옳지 않겠는가.
당시 난동의 주역들이 대부분 아직 투표권조차 있을까 말까한 청소년들이고 개중에는 재학중인 학생까지도 끼어 있었다니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런 오도현장이 정치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각계각층에서 다만 기폭이 되지 않고있을 뿐, 요소 요소를 위태롭게 굽이치고 있다.
타이르고 선도해도 제대로 입신하기가 어려운 요즘 세상에 오히려 그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워보려는 풍토, 이런 여파가 파장적으로 몰고 가는 각박한 세태는 날이 갈수록 우리의 화제를 얼마나 공허하게 만들 것인가 능히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최근에 발생하고 있는 각종 청소년범죄를 돌아보자. 숱한 인명을 해친 범인의 표정보다는차라리 그 곁에 둘러선 경찰간이나 시민들의 표정이 더 상기되어 있거나 침통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사진에 나타난다.
정상적인 노력에 의한 보수를 가지고 그것을 저축해서 결혼하고 집을 짓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한탕 멋들어지게 해치워서 쇠뿔을 단김에 뽑아 보련다는 생각이 적지 않은 젊은이들의 가슴속에「박테니아」처럼 기생하고있다.
아이는 결국 어른을 통하여 세상을 배우게 마련이다. 용돈 백원을 탄 꼬마가 일확천금 9백만원을 노리며 주택복권을 사는 것을 부모는 모르지만 아이들은 그들의 어버이가 얼마나 비도덕적인 행동으로 이 험난한 세상을 더 가파르게 만들고 있는가 하는 것을 눈치껏 살피며 지금도 가공스런 속도로 자라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팽배하는 사회적인 여러「그레셤」법칙을 어차피 제동해야만 할진데는, 누구나가 우선 제 분수에 맞는 생의 자세를 갖추고 또 그것이 상과 하로 고루 결뉴가 되도록 노력하는 마음가짐이 요청되는 시기가 진작 도래했다고 믿어진다.
▲필자=1945년생. 충남대 국문과 졸업. 6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밤마다의 굿』『신아리앙』등 작품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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