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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재임용 제 시행을 계기로 본 그 실상|정년퇴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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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매년 2월말이나 8월말이 되면 각 대학에서는 평균 2∼3명의 원로교수를 위한 조촐한 은퇴기념식이 열린다. 지난 2월말에도 서울대의 10명을 비롯, 사립대학에서는 1,2명의 원로교수 은퇴기념식이 있었다.
사립이건 국립이건 65세가 되면 교수직을 정년 퇴직하게 된다. 현재와 같이 정년제가 실시된 것은 1960년 5·16이후 세대교체의 바람이 사회를 휩쓸면서부터다. 처음에는 60세 정년제였으나 너무 이르다는 비판과 함께 65세로 늘렸다.
정년제에 해당, 수십 년 동안 몸담아 오던 대학을 떠난 은퇴교수는 현재까지 2백여 명. 그 중 7할 가량이 생존해 있다.
은퇴교수가 제일 많은 것은 의학분야. 다음이 이공계통의 자연과학분야, 음악·미술계통의 예술부문, 인문과학분야의 순 이다. 사회과학분야는 은퇴교수가 손꼽을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학계통이 가장 많은 것은 해방과 6·25 등의 사회격변기에서도 가장 안정된 분야였기 때문. 또 학문의 성격이 꾸준하고 세밀함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는 나세진 박사(70·서울대의대 은퇴)의 말이다.
자연과학계통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도 의대와 비슷한 이유. 그러나 60년대 중반부터는 경제개발·중화학 공업육성 등과 관련, 중견교수들이 대학을 떠남으로써 앞으로는 정년으로 은퇴하게 될 교수의 숫자가 크게 줄 것으로 전망했다(이균상 교수·서울대공대 정년은퇴).
반대로 정치·경제 등 사회과학계통의 은퇴교수가 많지 않은 것은 이들 분야 교수들의 사회진출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 사회진출의 기회가 적은 인문과학 교수들이 상당수(20∼30)명 있는 것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은퇴교수들의 현 직업은 대학에서의 전공분야와 거의 일치한다. 국립대학출신 중 약 20%가 사립대학에서 정년에 구애받지 않는 대학원장이나 연구소 책임자로 활동하고 있는 퇴직교수가 많다. 이병의(60년 서울대은퇴·학술원회장), 이숭령(73년 서울대은퇴·현 한양대국학연구원장), 이희승(62년 서울대은퇴·현 단국대동양학연구소장), 이제구(76년 서울대은퇴·현 경희대병리학교실)교수 등 이 대표적이다. 이공계출신 은퇴교수는 이과계통의 교수가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대신 공대계통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순수과학인 이과는 새로운 이론이 계속 나와 옛 지식의 소유자인 은퇴교수의 필요성이 별로 없지만 경험이 소중한 공과계통(특히 건축·토목분야)의 경우는 지금도 일선의 제자들이 은퇴교수를 찾는다.
73년 서울대공대에서 정년 퇴임한 박상조 교수의 경우 최근에 자문한 것만도 L「빌딩」·D「빌딩」등의 토목공사 등 굵직한 것이 많다.
한편 은퇴 후 여유 있는 시간을 이용, 계속해서 연구에 정진하는 교수들도 많다.
금년 2월 서울대를 은퇴한 최기철 교수와 이선주 교수는 재직 시에 수집했던 각종 표본과 민속약재료를 정리하기 위해 은퇴전보다 더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73년 서울대 음대를 은퇴한 김원복 교수는 지금도 1주일에 한 번씩 대학에 나가 학생들을 지도한다면서 은퇴이후 시간적 여유가 생겨 개인의 연구에 더 많은 정신을 쏟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금년 이화여대 음대를 은퇴한 채선엽 교수(성악)는 음악과 같은 아름다운 일을 하고 싶어 계속 교회에 봉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은퇴교수들은 재직 중시간에 쫓겨 손을 못 댔던 연구업적들을 정리하는데도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병도 박사는 80의 고령인데도 지난 4월초 8백여「페이지」에 달하는『한국고대사연구』를 마무리졌다.
이희승 박사는 연구소를 동양학의 본산지로 만들기 위해 젊은 학자들과 함께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는 것.
이숭령 박사는 작년부터 대학원 이외에 국학연구원을 설립, 국학관계자료의 영입·해제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반수정도의 은퇴교수는 고령과 노환으로 집에서만 기거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은퇴교수의 다수가 학·예술원 회원이다. 따라서 학·예술원은 은퇴교수들의 정기적인 모임과 소식을 전 해주는 장소가 되고 있다.
은퇴교수들이 가장 흐뭇한 때는 제자들에 의해 훌륭한 학문적 업적들이 발표될 때 자신의 영광처럼 여겨진다고. 반면 가장 슬플 때는 동료교수들의 부음을 들었을 때라고 말한다.
은퇴교수들은 현재의 65세 정년제는 좀 이르다는 의견. 70세가 정년이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었다.
앞으로 계속 있게 될 정년은퇴교수를 위해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개인의 평생 연구를 마무리 질 수 있도록 약간의 연구비를 지급해 주는 문제라는 것이 일부 은퇴교수들의 말이다. 은퇴교수들은 일정한 직업이 없기 때문에 수입이 없어 연구를 해 놓고도 출판을 못하거나 정리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최기철 박사는 평생 수집한 표본의 정리가 시급하나 자금문제로 손을 못 대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임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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