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국의 동북아 허브 구상은 임시변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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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주한 유럽상의가 동북아 경제중심 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햄프싱크 회장은 지난 6일 "경제자유구역 몇 개 만든다고 중국으로 갈 돈이 한국으로 오겠느냐"며 "동북아 허브 정책은 중국의 성장을 의식한 임시변통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멀어도 한참 멀었다는 혹평이다.

똑같은 평가가 같은 날 미국에서도 나왔다. 세계 CEO들을 대상으로 한 IBM비즈니스가치혁신연구소의 '아태 지역 국가 인식도' 조사 결과가 그런 내용이다. 한국은 중국.인도.싱가포르.홍콩 등에 밀려 아태 지역의 성장을 이끌 국가나 혁신을 추구하는 선진 국가 어디에도 끼지 못했다.

듣기에 거북하긴 하지만 결코 흘려버릴 수 없는 지적들이다. 우리가 아무리 동북아 허브를 외쳐도 외국 기업들이 외면하면 잠꼬대에 불과하다. 동북아 중심이 말로만 되는 게 아니다. 노무현 정부의 최상위 프로젝트가 왜 이처럼 비아냥의 대상이 됐는지 곰곰이 따져보는 게 순서다. 뭔가 감동을 줘야 고객이 몰리고, 그래야 허브가 되는 것이다.

유럽상의 기자회견장은 대정부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고 한다. "원스톱 서비스는 말뿐이고, 당국자가 자주 교체돼 그때마다 같은 설명을 반복해야 한다"거나 "7~8년간 똑같은 내용의 300쪽짜리 무역장벽 보고서를 내놔야 할 만큼 한국 정부의 대응은 실망스럽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물론 이들의 요구대로 나라 전체를 자유무역지대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양질의 인적자원과 지리적 이점 등 한국이 지닌 잠재력도 과소평가돼선 안 된다. 그러나 외국기업들이 한결같이 지적하는 문제가 복잡한 규제와 관료주의라는 점이 뼈아프다. 뒤집어 말하면 공무원과 제도가 바뀌면 동북아 허브의 가능성은 그만큼 열려 있다는 것이다. 동북아 허브는 달리 선택할 여지가 없는 유일한 생존 방안이다. 그러려면 거창한 프로젝트 설계에 매달리기 전에 정부와 공무원부터 비즈니스 마인드로 무장하는 게 우선이다. 노 대통령의 정부 혁신도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