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장 쟁탈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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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통금 시간이 지난 25일 상오 4시10분.
2대의 「버스」에 분승한 사복 경찰관 60여명이 대회 장소인 시민회관별관 앞에서 하차, 외곽 경비에 나섰다.
20분께 비주류계의 청년 당원 1명이 현장을 둘러보고 간 후 이진연 의원을 선봉으로 한 전남 영광-함평 출신 대의원 등 20여명이 도착.
이들은 경찰관에게 『당원들의 모임이니 경찰은 물러가 달라』고 요구했다.
이 때 청진동과 광화문 일대의 여관에 투숙 중이던 비주류 측 청년 50여명이 시민회관쪽에서 지하도를 통해 대회장 앞에 집결.
상오 4시45분께 현장에 도착한 이철승 의원은 정문 앞에 세워둔 철제 「바리케이트」를 모두 치우도록 청년들에게 지시했고 이 사이에 이택돈·이중재·정해영·박영록 의원 등이 속속 도착. 젊은 층들도 2백여명으로 늘어났다.
상오 5시20분 용달차에 실린 「피켓」과 「플래카드」가 도착하자 청년들은 모두 하나씩 들었다.
세로 1m 가로 8m 크기의 흰 광목으로 된 「플래카드」에는 『김영삼씨는 독재·독주 말고 당과 국민 앞에 사과하라』는 문구가 쓰였고 l백여 개의 「피켓」은 『김옥선 팔아먹고 야당 총재 웬 말인가』 『40대 기수가 벌써부터 노망인가』 『전당 대회는 불법 무효다』 『선명 기치 어디 가고 독재 횡포 웬 말인가』라는 말로 장식.
상오 6시35분.
『온다』 소리가 나면서 「코리아나·호텔」쪽으로부터 「경호원」이란 노란 완장을 두른 주류 측 청년 부대가 4열 종대로 대회장 입구로 돌입했다.
주류 청년들은 비주류가 쳐 놓은 철제 「바리케이트」를 치우면서 비주류 청년들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비주류 측은 이제까지 들고 있던 「피켓」의 머리 글자만을 떼어버린 후 1m 길이의 각목으로 만들어 주류 측을 후려치기 시작하자 주류 측도 몽둥이를 빼앗아 대항하여 약 10분간에 걸쳐 밀고 밀리는 치열한 육박전 전개됐다.
이 때 남대문 경찰서 경비 과장이 『각목을 들고 난폭하게 구는 자를 잡아라』고 명령하자 이제까지 열세에 있던 주류 측이 반격을 개시하여 순식간에 비주류 측을 별관 앞 계단 밑으로 밀어붙이고 정문 입구를 완전히 장악.
이 소란 통에 주류 측의 5, 6명이 머리와 안면에 큰 상처를 입었다.
비주류 측이 물러나자 노란 비표를 단 사복들이 각목을 모두 치우고 40여명의 기동 경찰이 증강되면서 대회장 입구는 완전히 주류 측이 장악했다.
주류 측 경비원들이 시민 회관 정면을 차지하고 있자 비주류 측 의원들을 포함한 대의원 1백여 명은 입장하지 않고 회관 정면 계단에 주저앉아 연좌 「데모」 태세.
주류 측 중앙당 사무 요원들이 7시 30분께 대의원 입장 절차를 밟으려는 무렵 비주류 청년 당원들이 다시 밀려왔다.
경찰들의 제지로 「코리아나·호텔」 뒤쪽에 포진했던 비주류 청년 당원 2백여명은 10여명의 「결사대」를 앞세우고 주류 경비원들에게 돌진.
한 지휘자가 『하나 둘 야』라고 신호하자 이들은 시민 회관 정문을 향해 목각 등을 던지며 쳐들어갔다.
정문 유리가 깨지고 주류 측 경비원들이 달아나는 순간 연좌했던 의원들과 비주류 대의원들이 일제히 대회장으로 들어갔다. 비주류 청년들은 단상에서 만세를 불렀다.
이들은 사무처가 준비한 「마이크」를 통해 장내를 정리하고 단상에 이철승 고흥문 정해영 김원만 정운갑 의원과 조윤형 김상현 조연하씨 등을 안내했다.
대회장을 빼앗긴 주류 측 청년 당원들은 광화문 한국문제연구소와 이들이 묵었던 여관들로 일단 철수.
김영삼 총재는 상도동 자택에서 7시45분쯤 문정수 비서로부터 대회장이 비주류에 의해 점령됐다는 보고를 받고 즉각 견지동 사무실에 있던 유치송 사무총장에게 내무 장관을 만나 대회장에 연금된 사무 직원들과 청년 당원들을 구출해주도록 요구하라고 전화로 지시.
김 총재는 국회 내무 위원인 박한상 박일 의원에게도 유 총장과 함께 내무부로 가라고 했다.
세 의원은 상오 8시20분께 각각 내무부 장관을 방문, 대회장의 질서를 못 잡고 있는 경찰의 처사를 항의.
김 총재는 이민우 국회 부의장과 김명윤 의원에게 주류 측 의원들을 중앙당사에 모이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이·김 의원에 이어 30분에는 김은하 원내총무, 박용만·이룡희 의원이 당사에 나오고 35분에 김 총재가 도착, 긴급 대책 회의.
당사에 나온 어느 대의원은 『4층 회의실로 대의원들을 소집해서 우리가 떳떳하게 대회를 치러버리자』고 흥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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