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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금값 5인이 좌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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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공휴일과 토·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상오10시 반만 되면 「런던·시티」 안에 있는 「로드차일드」은행의 한방에 다섯 사람의 영국 신사가 근엄한 표정을 하고 모여 앉는다.
이들은 모두 정장을 했으며 책장 위엔 「유니언·재크」의 소기와 고색 창연한 전화기가 놓여 있다.
이 다섯 사람의 신사야말로 세계의 금값을 결정하고 1년에 1천t 가까운 순금을 사고 파는 금상들인 것이다. 또 10평도 안 되는 조그만 이방이 바로 「런던」금 시장이다.
다섯 사람의 신사는 의장격인 「로드차일드」은행을 비롯하여 「모카타·골드스미드」「샤프·픽스리」「존슨·매튀」「새뮤얼·몬타큐」에서 나온 대표들이다.
「런던」금 시장은 이 다섯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것이 오랜 불문율이다.
가장 오래된 「모카타·골드스미드」는 영란 은행이 생기기 10년 전인 1684년에 창립되었으며 나머지 회사들도 1백20년 내지 2백년 전부터 금 거래를 전문적으로 해 온 「베테랑」들이다. 「런던」금시장은 17세기 중반부터 틀이 잡히기 시작, 1916년 금본위제가 확립되면서부터 1차대전이 터지기까지 1백년 동안 절정기를 이루었고 이들 회사들도 그때 황금 경기를 만끽했다. 2차 대전 동안만 금시장의 문을 닫았다가 1954년3월에 재개되고 그후엔 종전과 같은 독점적인 지위는 감퇴되었으나 여전히 세계 금 거래의「센터」가 되고 있다. 「런던」이 세계 금 거래의 중심이 된 데는 한때 영국이 세계를 지배하고 세계 금융·무역의 중추가 「런던」에 집중되었던데 기인된다. 오늘날 영국이 경제대국의 지위에선 물러났어도「런던·시티」가 세계 금융·보험의 중심지인 것과 마찬가지로 「로드차일드」은행의 한방이 세계 금시장의 표준이 되는 것이다. 「런던」금시장에서 거래하기 위해선 영란 은행의 공인을 받아야 한다. 현재 공인된 것은 전문 업체인 「모카타·골드·스미드」 「샤프·픽스리」 「새뮤얼·몬타큐」외에 여러 공인 은행이 있으나 「로드차일드」와 「존슨·매튀」2개 은행 외엔 금시장에 참여 않고 있다.
금 거래를 하려면 고도의 전문지식이 필요한데다가 금시장이 일종의 폐쇄적인 회원제 「클럽」과 같이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10시30분이 되면 책상 위의 「유니언·재크」기를 옆으로 누이면서 「로드차일드」은행의 대표가 개장을 선언하고 그날의 시가를 발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묻는다.
그날의 시가는 그 전일의 종가와 그 동안의 정보 등을 감안, 이 가격이면 거래가 가장 많을 것이라고 「로드차일드」은행에서 판단한 가격이다.
「로드차일드」은행이 「런던」금시장의 주도권을 잡게 된 것은 세계 최대의 금 수출국인 남아의 금 판매를 위임받은 영란 은행이 그것을 다시 「로드차일드」은행에 재 위탁했던 역사적 인연 때문이다.
「로드차일드」은행은 1804년에 창설되었는데 은행의 「프라이드」도 대단하여 본점 건물엔 간판이고 뭐고 아무런 표식도 없다. 「로드차일드」은행이면 그만이지 다른 무슨 간판이 필요하냐는 자부이다. 또 금시장이 매일 열리는 만큼 보안이 철저하여 사전 약속이 없으면 들어갈 수도 없고 사진 촬영도 금지되어 있다.
「로드차일드」은행 대표가 그날의 시가를 발표하면 다른 네 사람은 그 가격으로 금을 사겠다든지 또는 팔겠다든지, 거래를 않겠다든지 하는 의사를 발표한다. 물론 책장 위의 직통전화를 통해 본사와 항시 연락할 수 있다. 본사와 연락할 땐 「유니언·재크」기를 바로 세운다. 운동 경기 때의 작전 「타임」과 같은 것이다. 금 판매에 대한 의사가 일단 발표되면 의장은 거래량을 「체크」한다. 금시장에 참가하는 5사 대표들은 고객의 주문에 의해 금을 거래하는 것이므로 살 주문과 팔 주문을 상계하여 얼마만 사겠다든지 얼마만 팔겠다든지 하는 매방과 매방의 어느 한 쪽에 선다.
「런던」금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은 금 막대기·금화·금 증서 세가지인데 4백「온스」(12.5㎞)짜리 금 막대기가 가장 많다.
최소거래 단위는 3백50「온스」. 금은 반드시 순도 99.5%이상이 되어야 하고 「런던」금 시장에서 공인하는 분석업자의 각인과 보증서가 있어야 한다.
현재 공인된 분석업자는 영·미·소·중공 등 42개국의 42개사다. 만약 사는 사람이 특수한 모양의 금을 사고자 하거나 파는 사람이 규격에 안 맞는 금을 내놓을 땐 그 비용을 따로 물어야 한다.
「로드차일드」은행에서 내놓은 싯가대로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금가는 거래가 성립될 때까지 올라가거나 내려간다.
매매의 「밸런스」가 잡힐 때까지 가격은 변동되는데 도저히 가격이 안 맞으면 적당한 가격으로 주문량에 따라 안배하기도 한다. 이때 결정된 가격이 「런던」금가로서 세계 금가의 기준이 된다. 이런 금 거래는 하오3시 다시 한번 같은 방에서 이루어진다. 「런던」금가는 완전히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결정되는데 남아나 소련에서 금을 대량으로 내놓을 땐 값이 떨어지고 통화 파동으로 금 투기가 일어나면 폭등한다. 일단 금가와 거래량이 결정되면 각자는 「사인」을 하고 금시장은 폐장이 선언된다. 「유니언·재크」기도 다시 세워진다. 그 동안의 시간은 대개 10분내지 15분. 지극히 짧은 시간 동안 지극히 간단 명료하게 수백만 내지 수천만「달러」어치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금 결제와 금의 인수는 거래가 성립된 지 2일 이내에 이루어진다.
거래는 현물이 압도적이지만 더러 선물 거래도 있다. 금 매매에 대한 수수료로 5개사는 일률적으로 매매 가격의 0.25%를 고객으로부터 받는다. 최저 단위는 백「달러」「런던」 금시장에서 아무리 본 거래를 해도 보증금은 걸지 않는다. 「런던」 금시장에서 부도나 위약이란 이제까지 한번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런던=최우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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