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가-권영대<물리학·서울대 명예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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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73년 서울대를 그만둘 때(정년)까지 강의와 연구의 필요에 따라 구독한 책이 현재의 서가를 채우고 있다.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약 8천권. 물리학이 전공이었던 만큼 1천여권의 물리 관계 서적과 기타 보조과학 서적이 2천권 정도 차지하고 있다. 70년부터는 우리나라의 과학에 관심이 쏠려 이조 중기 이후 실학자들의 과학 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자연 현상 연구를 「어떻게」라는 의문을 가지고 시작하지만 이조의 실학자들은 「왜」라는 의문에서 과학을 시작했다는 점이 나에게는 크게 공감을 준다. 과학도 역시 사상적인 뒷받침을 가지고 「왜」라는 관점에서 시작돼야 하기 때문이다.
54년 피란지에서 서울에 왔을 때 생활비를 절약하며 북해도 대학 시절에 사 모았던 귀중한 과학 관계 서적(대부분 구미 과학자들의 초판본)이 몽땅 없어졌을 때 가장 가슴 아팠다. 특히 선조인 권근공의 『양촌집』 원본과 권한공의 『석주집』 원본이 없어져 단상에 대한 죄스러움을 느낀다. 이때 젊은날의 일기와 「앨범」도 함께 없어져 소중한 기억들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이 같은 기억들보다는 이조말의 실학자들에게서 지금보다 더 높은 과학 사상을 찾아낼 수 있어 흡족한 마음으로 서가를 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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