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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그릴 땐 한의사 과외 … 경쟁력은 책상서 나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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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가 배우 폴 뉴먼처럼 보이나요.” 만화가 허영만씨는 요즘 별명이 ‘폴 뉴먼’이라며 크게 웃었다. 예전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였다고 한다. “좋은 건 다하려고 하나요. 하하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만화가 허영만(67)씨는 지금 네팔에 있다. 4일 현지로 날아갔다. 2011년 10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남벽에서 실종됐던 산악인 박영석씨를 기리기 위해서다. 허 화백은 열여섯 살 아래인 박씨와 형님 동생 사이다. 2001년 박씨의 히말라야 14좌(座) 완등 때부터 인연을 맺어왔다.

 2일 서울 강남 대모산 자락에 있는 화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박씨의 넋을 위로할 소주와 제수용품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고 한 달 전 백두산에 함께 갔어요. 그렇게 가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영석이가 화를 내더라고요. 벌거벗겨 쇠사슬로 묶어놔도 기어코 산에 갈 친구입니다.”

 둘은 평소 마음이 통했다. 목표를 향한 끈질긴 열정이었다. 박씨에게 산이 있다면, 허 화백에겐 만화가 있다. 허 화백은 신간 『허허 동의보감』에서도 박씨를 기억했다. “박영석 대장은 많이 먹고 힘 못 쓰는 대원을 제일 싫어한다”고 적었다.

 허 화백이 데뷔 40년을 맞았다. 1974년 『집을 찾아서』 이후 황소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숱한 화제작을 쏟아냈다. 『각시탈』 『제7구단』 『오! 한강』 『날아라 슈퍼보드』 『미스터Q』 『비트』 『타짜』 『식객』 『꼴』 등등 그가 없는 한국만화, 나아가 우리 대중문화는 상상하기 어렵다.

허영만 화백 작업실에 붙은 메모 쪽지. 아래는 지난달 15일 문하생들과 헤어지며 그린 만화일기.

 - 엉덩이의 힘이 대단하다.

 “문하생들에게도 늘 강조한다. 싸돌아다니면서 무슨 일을 하겠느냐고. 왔다 갔다 폼 잡을 시간이 없다. 경쟁력은 책상에서 나온다.”

 - 규칙적 생활로 유명하다.

 “보통 새벽 5시에 일을 시작한다. 오후 1시까지 해도 하루 8시간이다. 사람의 에너지는 하루 종일 팔팔한 게 아니다. 일은 집약적으로 해야 한다. 중요한 건 노동의 양이 아니라 질이다.”

 - 언제부터 아침형 인간이었나.

 “신혼 시절 화실 옆에 선배가 살았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일을 하고 오후에 춤을 추러 나가더라. 그때 일찍 일어나는 걸 배웠다. 한동안 잊어버렸다가 10여 년 전부터 다시 시작했다.”

 허 화백의 일상은 작업실 곳곳에 붙은 메모 쪽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망치고 실수하고 깨질 때 한걸음 발전한다!’ ‘날고 기는 놈도 계속하는 놈한테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등 자신을 경계하는 문구가 한둘이 아니다.

 - 지금까지 얼마나 그렸을까.

 “모르겠다. 130~140편쯤 될까. 정말 열심히 그렸다고 자부할 수 있다. 할 만큼 했고, 누릴 만큼 누렸다.”

 - 평소 2인자를 자처해 왔다.

 “70년대에는 『독고탁』의 이상무, 80년대에는 『공포의 외인구단』의 이현세에게 밀렸다. 2인자로 좌절할 수 없었다. 5등 안에만 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편집자의 입김을 받지 않고,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정도면 됐다.”

 - 지금은 1등이 아닌가.

 “1등은 피곤하다. 뒤집히는 건 순간이다. 그게 세상 이치다. 연예인이 왜 마약에 빠지나. 정상에서 밀려난 허탈감 때문이 아닌가.”

 -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매일 저녁 사람을 만난다. 다섯 번에 네 번은 일과 무관하다. 친구, 선후배들과 술을 즐긴다. 분위기를 띄우려 ‘와이담(淫談)’도 자주 한다.”

 - 원래 미대 입학을 희망했다. 아버지의 멸치사업이 망하면서 열아홉 나이에 서울역에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

 “미대에 갔다면 어렵게 화가생활을 하고 있거나 미술교사로 은퇴했을지 모른다. 지금쯤 친구들처럼 당구장에 있지 않을까. 가정이지만 만화가가 된 게 훨씬 나은 것 같다. 대학을 못 가서 후회한 적은 없다.”

 허 화백은 요즘 『동의보감』에 빠져 있다. 양천(陽川) 허씨 선조인 허준의 역작 『동의보감』의 핵심을 추려 『허허 동의보감』(가디언) 1, 2권을 냈다. 지난 2년간 한의사 셋과 함께 매주 수요일 원전을 공부해 왔다.

 - 반(半) 한의사가 됐겠다.

 “턱도 없다. 머리가 나쁜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공부하고 나면 금방 잊어버린다.”

 - 『동의보감』은 욕심을 버리라고 가르친다. 본인에게 남은 욕심이 있다면.

 “만화일기를 계속 쓰는 것, 건강하게 사는 것이 아닐까. 나이 들어 가장 추한 건 돈 욕심이다. 노년에는 적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 책에 나오는 양생법을 실천하나.

 “그렇다면 벌써 구름 타고 다니는 도인이 됐을 것이다. 일례로 마누라와 잠자리를 멀리한다면 집에서 밥술이라도 얻어먹겠나. 허준 선생도 그렇게 못 했을 것이다. (웃음) 술 한잔이라도 하며 살아야 한다. 수시로 대리운전을 부르는 건 문제지만.”

 - 화실 벽에 ‘술 한잔. 소주 물 타서’ 메모가 붙어 있던데.

 “술을 끊으면 친구가 다 끊긴다. 그게 문제다. 줄이기는 해야겠지만 혼자 엄숙하게 있으면 후배들이 전화를 하지 않는다. ‘나이 들면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라’고 했다.”

 - 여유가 있어 보인다.

 “『동의보감』은 치료가 아니라 예방이 목적이다. 예를 들어 소식(小食)을 권장한다. 나도 조금씩 밥알 수를 줄여나고 있다. 과식을 하면 몸이 불쾌해지고 바보가 된다.”

 - 진짜 음식은 담담한 맛이라고 했다.

 “그게 고수의 맛이다. 2년 전 대구의 한 고택에서 비빔밥을 먹은 적이 있다. 제사를 지낸 나물에 조선간장만 넣었는데도 밤새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셨다. 이후 나는 비빔밥에 고추장을 넣지 않는다. ‘나 여기 있소’ 하고 툭 나서지 않고 여럿이 모여 한 맛을 내는 게 최고다. 인생도 그래야 한다. 싸울 일이 없다.”

 화실 밖 대문에 노란 개나리가 보였다. 대모산 자락에 벚꽃이 한창이다. 하지만 작업실 안에는 냉기가 돌았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허 화백은 최근 고민에 빠져 있다. 지난달 문하생 세 명을 내보내고 혼자 일하고 있다.

 - 어떻게 된 일인가.

 “‘동의보감’과 ‘식객2’를 지난해부터 카카오페이지에 연재해 왔지만 수입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올 1월 연재를 중단했다. 조회 수는 많았지만 돈을 내고 보는 사람이 없었다. 유료화에 실패했다. 지난 4년간 화실 운영에 12억원을 썼다. 한계에 온 것 같다.”

 - 이유가 무엇일까.

 “내 만화가 10, 20대의 구미에 맞지 않은 것 같다. 이것저것 다른 소재를 찾는 중이다. 종전의 진부한 이야기와 표현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그림에 변화를 줄 것이다.”

 - 웹툰 전성시대가 열렸는데.

 “대부분 한두 명 일하는 경우다. 문하생을 키우고, 일도 함께하는 내 방식과 맞지 않는다. 많을 때는 우리 화실에 23명까지 있었다. 야구에도 메이저리그가 있지 않나. 골프의 타이거 우즈도 있다. 만화계에도 그런 모델이 있어야 할 텐데…. 70년대 불량만화 작가로 몰리는 등 더 힘든 때도 있었다. 어떻게든 버틸 것이다.”

 허 화백 책상 위에 붙은 또 다른 쪽지가 보였다. 소설가 최인호의 유고집 『눈물』에서 따온 문구다. ‘환자로 죽지 않겠어요, 나는 작가로 죽겠습니다. 원고지 위에서 죽으면 좋겠습니다’. 화업(畵業) 50년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떼는 그의 다짐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얼마나 간곡한 심정입니까. 그래도 저는 행복합니다. 이 나이까지 제 만화를 기다리는 독자가 있으니까요. 몇 살까지 만화를 그릴 수 있는지, 어떻게 부활할 수 있는지 꼭 보여주겠습니다.”

허영만의 밥줄, 취재가방엔 뭐가 들었나

허영만 화백은 야전병사와 같다. 소총수가 배낭을 잊지 않고 챙기듯 세상만사가 취재현장인 박 화백은 언제나 가방을 둘러메고 다닌다. 그는 가방을 ‘밥통’이라고 부른다. 그에게 밥을 가져다 주는 소중한 물건인 까닭이다. 만화 입문 때부터 몸에 붙은 습관이다. 그는 “이게 없으면 제대로 일할 수가 없다”고 했다. 요즘 박 화백이 들고 다니는 가방은 시장바구니를 닮았다. “큼지막하니 많은 걸 담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내용물을 하나하나 꺼내 보였다.

 우선 스케치북 두 권과 만화일기장 한 권. 그가 보고 들을 것을 기록하는 일종의 메모리 카드다. 지금까지 쌓인 스케치북이 200여 권에 이른다. 만화일기장에선 그가 2주 전 다녀온 일본의 지하철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볼펜·샤프·매직 등 필기류가 담긴 필통, 만년필과 돋보기도 필수품이다.

 눈에 띄는 건 율무씨와 반창고다. “『허허 동의보감』을 작업하며 배운 것인데 용천혈(湧泉穴·둘째 발가락과 셋째 발가락의 바닥 부분에 움푹 파인 곳)에 껍질을 까지 않은 율무씨를 붙였더니 평소 급한 성질을 누그러뜨리는 데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책상에 오래 앉아 생긴 디스크협착증 치료약도 있다. 예전에는 묵직한 카메라를 넣었으나 요즘에는 스마트폰으로 해결하는 경우도 많다.

 가방에는 책 한 권도 반드시 들어간다. 그가 최근 읽은 책은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을 조명한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 한 달 전 작업실에 들인 검정 개 때문에 강아지 훈련책도 독파했다고 한다.

박정호 문화·스포츠·섹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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