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태지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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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최근 어느 조합의 간부들이 횡령혐의로 온통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영세어민들을 상대로 한 이 신용조합은 「생산 지도비」라는 명목으로 한해에 무려 2천만원 상당의 돈을 썼다.
그 조합의 직제를 보면 「지도원」이라는 것이 있다. 이들은 어로 현장 등에서 생산을 독려하고, 또 기술지도 등을 한다. 따라서 생산 지도비는 그 조합의 경상예산에 명시된 항목이기도 하다.
어느 단체나 유흥비 명목으로 지출 할 수 있는 제도는 없다. 섭외비가 있긴 하지만, 이것은 국세청으로부터 한도를 인정받아야 한다. 업무추진을 위한, 말하자면 윤활유로서의 구실을 인정하는 셈이다.
문제의 조합은 바로 이 섭외명목의 유흥을 위해 「생산 지도비」의 항목을 유감없이 활용 (?)한 것 같다. 「제도적인 합법」을 가장한 일종의 변태지출이다.
가소로운 것은 이 조합의 순이익보다도 그 유흥비가 더 많이 쓰인 사실이다. 순이익 1천 2백만원에 유흥비는 2천만원, 그러니까 그 조합의 설립목적도 술 마시고 노는 데에 있었다.
「생산 지도비」뿐이 아니다. 무슨 협의비 등 이를테면 어디에도 적용할 수 있는 모호한 지출항목들을 편리하게 이용한 셈이다.
이런 사례는 우리 주위를 돌러보면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신용조합은 아니지만, 가령 무슨 운수조합 등은 의례 공공요금인상 때면 한번씩 진통을 겪는다. 어디와 결탁하기 위해 상당액의 섭외비를 지출하는 사례가 노출되는 것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섭외나 유흥을 필요로 하는 기업경영방식과 함께 하나의 제도적인 부조리나 마찬가지다. 제도자체가 그런 것을 조장하게끔 되어있는 것은 원천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영수증만 해도 그 공신력에는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 이번 횡령조합의 경우도 음식점 등의 영수증을 임의로 변조했다. 변태지출에 액수조작까지 겹쳤다.
어느 사회에서나 부패의 원인이 제도적인 불합리에 있을 때 그것은 쉽게 뿌리뽑을 수 없다. 장치가 잘못된 기계가 착오 없이 작동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기업의 운영도 역시 하나의 기계에 비유할 수 있다. 공정상 변태나 변조가 가능할 때 규격제품은 생산되지 않는다. 그것은 기업 자체를 병들게 하며, 끝내는 파국에까지 이르게 한다.
그 조합만 해도 그렇다. 생산 지도비나 협의비의 근거가 모호하기 대문에 필경은 유흥비조의 지출도 가능했을 것이다. 변태지출은 변태기업을, 그것은 다시 변태사회로까지 번질지도 모른다. 제도적 부조리의 부작용은 실로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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