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언어정화 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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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근 우리 나라에서는 국어 순화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불필요한 외래어의 추방을 골자로 한 국어 정화운동은 지난 1월 「프랑스」에서도 전개되어 국제적인 관심을 모은바 있다. 고려대 김화영 교수(불문학 박사)로부터 이른바 「영어 쇄국령」으로 불리는 「프랑스」의 언어정책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들어본다.
「프랑스」의 「발레리·지스카르-데스텡」 정부는 지난 1월 4일자 『관보』를 통해 이른바 「영어 쇄국령」을 공포했다.
이것은 전후 30년간 「프랑스」어를 가속적으로 오염시키기 시작한 외래어 특히 영어를 「프랑스」말로부터 추방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프랑스」어 속에 흘러들어 온 영어 및 그것에 최초의 출처를 둔 말을 「프랑글레」라고 하는데 문제의 「프랑글레」에 해당하는 「프랑스」어가 있는 한 광고·「텔리비젼」.사업계약·상품보증서·정부문서에서 그것의 사용을 금지시킨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얼른 보기에는 국수적 성격이 농후한 정책 뒤에는 「프랑스」말이 서구문명과 그 역사 속에서 누려온 자부심이 배경을 차지하고 있다.
확장 일로에 있던 중세 「프랑스」어가 퇴조하기 시작한 것은 백년전쟁에서부터 「프랑솨」 1세에 이르는 기나긴 동안이었는데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프랑스」문화 속에 영어문화가 유입되기 시작했다.
50년대는 「프랑글레」유입의 최고기록을 남겼는데 「마키팅」 「힛·퍼레이드」 「쇼·비즈니스」 「애프터·서비스」 「디스크·자키」 「드로그스토르」 「셀프·세르비스」등 헤아릴 수 없는 영어 유입이 오늘날 「프랑스」를 특징 지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사람들의 모국어 음운체계에서 비롯된 습관은 영어를 발음상으로 변질시켜 미국인 자신도 알아듣기 어려운 「프랑글레」를 탄생시켰다.
가령 「탈키·발키」(Talkie walkie) 「쇠크앤드」 (Shake hand) 「스탕다르」(Standard)「파르킹그」(Parking) 따위가 그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인명표기에서 더욱 두드러져 「옹프레」(험프리) 「엘리자베트·타일로르」(엘리자베드·테일러) 「장·세바스티앙·바크」(요한·세바스찬·바하)와 같은 우스꽝스러운 이름들도 허다하게 만들어 냈다.
이와 같은 가속화하는 영어 오염에서 「프랑스」어를 구제하겠다는 의도로 「드골」은 2회에 걸쳐 영국의 구주공동시장 가입을 반대했으나 결국은 실패했다.
이번 「지스카르」 대통령의 영어 추방령도 이와 같은 노력이 노골화하여 제도장치의 실력으로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프랑스」어 방위전쟁』이라는 제목의 「르·몽드」지 기사는 우선 이 정책이『애국적이기는 하나 언어학적으로 이를 정당화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언어학적으로 정당화할 이유가 없다는 것은 「프랑글레」의 발생과 파급을 뒷받침하는 세계적 추세, 경제 사회 문학적 영향관계 등을 근본적으로 고칠 수 없는 한 부분적인 「금지」는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다른 한편 외국어의 유입은 반드시 해로운 것만이 아니라 모국어의 어휘를 풍부하게 하고 잠재력을 강화하기도 한다는 의미도 된다.
반면 「영어 추방령」의 옹호자들은 영어 영향에서 온 이들을 이해는 하면서도 사실상「프랑글레」의 대부분이 다양한 파생어를 낳아 확대하여 사용할 수 있는 풍부한 성질의 어휘들이 아니라 단독의 명사들이라는 점, 그리고 그에 해당하는 「프랑스」어가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사용을 기피하게 만든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스카르」 대통령의 방식이 온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첫째, 이 정책은 언어학자들의 근거 있는 자문을 통한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국수적인 성격이 농후하며 대통령 자신의 입장 변호와도 관련이 없지 않다는 추측도 있다. 따라서 「프랑글레」의 어휘 중 「프랑스」어로 대체할 기성용어의 확인 및 신조어의 책정이라는 사업은 중진급 언어학자들을 참여시킨다는 조건에서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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